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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Dec 09. 2022

종이 여자를 읽고

기욤 뮈소, 이 사람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안다.


어렸을 때 기욤 뮈소의 책을 몇 권 읽은 기억이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제목이나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참 가볍고, 재밌고, 읽기 쉽고, 뭐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 주로 사랑을 다뤘던 것 같은데, 아닌가? 아무튼 오랜만에 기욤 뮈소의 책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독서 모임을 하나 만들어서 운영 중에 있는데 한 회원분께서 재밌게 읽으셨다고 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첫 번째 정모 지정도서로 선정해봤다. 기욤 뮈소, 이름도 기요운 뮈소 같이 생겨가지고 글도 아주 앙증맞고 재미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문체와 스토리텔링을 아는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것인지, 책을 읽으면서 그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책을 써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그의 책을 읽는 내내 그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에 부러운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톰이 쓴 소설 속 인물 빌리가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현실 세계로 뚝 떨어져 이 둘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진부하다, 진부해. 그런데 이 진부한 주제를 가지고 이토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니! 그리고 막판 전개의 구성, 그리고 반전은 가히 일품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작품성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상업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책임은 부인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다음은 읽으면서 메모한 것들.



p52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지난 육 개월 동안 수천번도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봤어. 그렇지만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기만 해도 역겨운데 낸들 어떡하란 말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다 적절한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정말 피부로, 뼈로 느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적당한 때가 있다. 


p235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분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걸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정확하게 갖다 주기 위해 사람과 사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을 만든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창조자이며 그 은총의 순간은 모두 그분이 계획한 것이다.


-위 메모와 같은 이야기. 모든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 혹은 자연스러운 '도'의 작용, 그러니까 자연인 것. 


p315

볼테르(1769) - 독자들이 절반을 만든 책이 가장 쓸모 있는 책이다.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독자가 없는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글을 쓰는 많은 이유 중에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서 연유한다. 글은, 그러니까 책은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독자들의 몫인 것 같다. 음과 양의 조화. 음은 독자, 양은 책인 것. 


p337

에셀(극 중 어느 할머니) - 삶은 여러 번의 선택이 있는 비디오 게임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 삶도 시간과 더불어 흘러갔다.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걸 하며 사는 게 인생이었다. 행운은 양념처럼 살짝 곁들여질 뿐, 나머지는 모두 운명이 주관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었다. 


-어찌 메모된 것이 다 이런 것밖에 없지. 이게 바로 확증 편향이라는 것이구만.


p400

픽션의 세계에 사는 것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마약이나 술에 의지해 잠시 동안 비참한 현실을 잊는 것이다 다를 바 없었다. 어느 순간 무시무시한 현실이 다시 상징의 세계를 압도하며 서슬 퍼런 이빨을 드러낼 것이기에 우리는 지극히 무기력할 뿐이었다.


-사실 가장 픽션인 건 우리의 삶인데, 그 속에서 살다 보니 무시무시한 현실을 만나게 된다. 삶을 좀 소풍처럼 살아낼 수 없을까, 픽션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살아낼 수는 없을까. 왜 뭐든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스스로 삶의 복잡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불행을 자초할까. 우리 인간은 왜 그럴까. 


p444

로맹 가리 - 지고한 사랑이란, 두 개의 꿈이 만나 한 마음으로 철저히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건 그냥 너무 달콤해서...


p452

그렇게 해서 결국 첫 번째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톰이 만든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빌리가 살게 될 세계가.


활자의 매력. 시각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영화는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지만 활자는 각자가 처한 환경, 지식, 인종, 문화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아 상상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나도 독자들로 하여금 펼쳐질 세계를 언젠가 꼭 한번 창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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