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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May 23. 2023

팀 켈러 목사님을 기리며

『결혼을 말하다』를 읽고


최근 목사님의 저서 『결혼을 말하다』를 세 번째로 통독했고 또다시 큰 감동을 받았다.


아내에게, 그리고 주변 여러 사람들한테 이 책을 선물하거나 추천할 정도로 나는 이 책을 정말 좋아한다. 이 책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하여 결혼이라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기독교적 관점에서 결혼이라는 관계는 인간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내린 자기 중심성을 발견하여 그것을 억누르고 제거한 뒤에 그것이 있었던 자리에 아내(남편)를 온전히 두어 깊이 연합하는 관계를 말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 누가 정의하든 그 뿌리에는 반드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의 지난 연애를 포함하여 주변을 보아하니 상대방을 위한 마음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마음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문제는 이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토요일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남자와 나들이를 가고 싶은 여자가 있다고 해보자.


① 최악의 경우는 두 사람 모두 자기 중심성이 지나치게 강하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남자는 쉬고 싶다고 말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여자는 서운함을 숨기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며 남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여자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여자는 자기가 남자를 사랑하여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감정에 깊이 뿌리내린 자기애를 발견하지 못한다. 함께 했을 때 가장 좋은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인 것이다! 남자 또한 다르지 않다. 여자로부터 존중(사랑)을 바라고 있지만 자신이 사랑을 줄 생각은 하지 못한다. 자기가 우선인 것이다. 두 사람의 나들이 계획은 산산조각 난다.


② 적당히 괜찮은 경우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자기 중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억제하며 상대방을 그 중심에 두어 사랑하는 경우다. 남자는 쉬고 싶지만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나들이에 나선다. 남자는 여전히 피로함을 느끼며 그 안에 뿌리내린 자기 중심성을 발견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음에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 호텔에 도착한 남자는 긴 운전 때문에 쌓인 피로를 잠시 덜어내고 싶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는 다음 일정을 재촉한다. 남자는 또 묵묵히 여자를 따라나선다. 여자는 마냥 행복해한다. 이것이 사랑이라며 기뻐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위한 사랑일 뿐, 그 자리에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 없음을 결코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목사님은 이러한 경우도 꾸준히 지속되기만 한다면 여자 또한 자기 중심성을 발견하고 남자에게 헌신할 수 있다고 한다.)


③ 최선의 경우는 두 사람 모두 자기 중심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억제하여 상대방을 그 중심에 놓는 경우이다. 남자는 쉬고 싶지만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나들이에 나서고, 여자는 이런 남자의 헌신을 발견하여 데이트 가운데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호텔에 도착한 남자는 긴 운전 때문에 쌓인 피로를 잠시 덜어내고 싶지만 해맑은 여자를 바라보며 또 자리를 털고 애써 일어난다. 여자는 바로 다음 일정을 계속하고 싶지만 남자를 배려하여 잠시 쉴 것을 제안한다. 물도 떠다 주고 마사지도 해준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깊은 존중과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나들이 내내 분위기는 더없이 화목하다.



대부분의 관계 양상은 1번이나 2번과 크게 다르지 않다. 3번의 경우에는 두 사람 모두 자기를 내려놓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높여졌다. 3번과 같은 관계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기 중심성을 내려놓기 힘들다는 해석도 가능하겠다. 사랑의 본질(상대방을 위하는 감정)이 이토록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하는 사랑을 한다. 그래놓고 '사랑'한다니 황금으로 도금된 쇳덩이처럼 그 무게만 잔뜩 나갈 뿐 값어치가 없게 된다. 


내 경우 이 책을 읽고 내 안에 존재하는 치명적인 자기 중심성을 발견했고 아내와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나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나만 낮추려고 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도 자기중심적일 위험이 있으며, 그러므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경고하신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번 요리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 요리할 수 있는 기회를 뺏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부는 서로 낮아지기도 하고 또 높여지기도 해야 한다. 


이 책은 이밖에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동거, 독신, 성관계 등과 관련하여 여러 지식과 지혜를 전달한다. 개인적으로는 목사님의 말씀과 동양의 음양 사상, 그리고 융이 강조하는 무의식(아니마, 아니무스)과 관련된 내용이 합해져 하나의 관념적인 무언가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 알겠지만 설명할 수 없으니 여전히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동서양을 관통하는 한 줄기의 진리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발견하지 못했다면 찰나의 순간 느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 책은 정말 훌륭한 책이라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은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팀 켈러 목사님이 지난 19일 소천하셨다. 소천하시기 하루 전 날에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I can't wait to see Jesus. Send me home. 

(주님을 정말 뵙고 싶구나. 이제 날 천국으로 보내줘.)


그리스도인다운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목사님을 알게 된 건 2021년 어느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밀리의 서재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목사님의 저서 『내가 만든 신』를 읽게 되었고 기독교적 세계관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나는 여전히 절대자의 존재를 믿을 뿐 무교이다.) 이 책에 큰 울림을 받아 연이어 읽은 목사님의 저서가 바로 『결혼을 말하다』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간 살아오며 쌓아 올린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완전히 다시 세워지는 감동을 받았다. 팀 켈러 목사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셨고 또한 나의 스승이셨다.


오늘(23일) 평소처럼 점심을 먹으며 팀 켈러 목사님의 말씀이나 들을까 유튜브를 켰다가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며 밥알을 꾸역꾸역 삼켰다. 눈빛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사람의 죽음에 이렇게 깊은 슬픔을 느끼다니... 목사님께서는 죽음을 반기셨기에 나로서는 슬퍼할 필요가 없었지만 존경하는 이를 이 세상 가운데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벅차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의 감정을 떠나 목사님은 더 좋은 곳으로 가셨다. 기독교와 무교 사이 어느 경계에서 길을 잃은 나는 목사님이 인간이라는 존재보다는 훨씬 더 나은 존재로 계신다는 것을 막연히 알고 또한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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