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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Feb 09. 2024

나는 깨어났을까

깨어나십시오 / 앤소니 드 멜로

모든 진리가 여러 갈래로 흐르다가 결국 하나의 커다란 바다로 흘러들어옴을 느낀다.


29살의 어느 날, 창원이었다. 쉬는 날이라 동네 작은 도서관에 들러 서고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한 책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노자의 『도덕경』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 허세가 심했으니 아마 이 책을 호기롭게 뽑아 든 목적은 '있어 보이고 싶다'였을 것이다. 목적이야 어찌 되었든 이 책은 나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고, 나는 곧 새사람이 되었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도덕'은 우리에게 익숙한 의미로서의 도덕이 아니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라는 이 책의 말처럼 나의 능력으로는 도는 물론이고, 이 책에 대해서도 함부로 떠들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매 순간 이 삶 가운데 소리 없이 작용하는 도를 느낄 뿐이고, 최대한 도의 흐름에 맞게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사람은 안 변한다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도덕경에 이어 도교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장자』까지 읽은 나는 지적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무위'를 행하지 않고 '위'를 행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그때도 분명히 앎의 단계였을 뿐이지, 깨닫지는 못 했던 것 같다. 도덕경을 처음 읽은 지 5년이 넘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는 '위'가 의식되어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무위'를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엔 무위를 실천하는 단계도 없어지고, 이 모든 것을 다 잊어야 하는 단계까지 가야 하니 아직 한참 멀었다. 


도덕경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도덕경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 책 『깨어나십시오』에 대해 정리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였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도덕경 생각이 많이 났다. 


아시다시피 모든 신비가들이 - 가톨릭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그들의 신학이 무엇이고 종교가 무엇이든 - 한 가지 것에 이구동성으로 동의합니다. 즉, 모든 것이 좋다, 모든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비록 매사가 뒤죽박죽 이더라도 모든 것이 좋다고 합니다. 확실히 이상한 역설이죠.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겁니다. 『깨어나십시오』p11


모든 것이 좋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이 말은 성경의 한 구절이기도 한 '범사에 감사하라'와도 일맥상통한다. 모든 것이 좋고,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기준과 판단이 없어야 한다. 기준과 판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인지하며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를 잊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존재를 잊는다는 것은 불교에서는 '무아'로 설명되고, 도덕경에서는 '도'에 기댄 삶으로 설명되며, 장자에서는 '좌망'의 경지로 설명되기도 한다. 결국 궁극의 진리는 명쾌하게 설명되거나 체감할 수 없을 뿐 모든 종교적, 비종교적 영성 단계에서 다양한 형식을 통해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난다는 건 결국 '나'의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우주는 고정불변의 실체이며, 변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임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삶의 다양한 이벤트에 희로애락이라는 이름표를 붙이지만, 나의 희가 누군가에게는 노이며 누군가의 락이 나에게는 애인 것을 생각하면 이 진리는 더욱 명쾌해진다. 새옹지마 이야기에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노인에게 발생하는 일들을 평가하지만, 노인은 그저 덤덤하게 반응하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깨어난 사람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분이 깨달음을 이룬다면 여러분은 자기에 대한 관심에서 그랬을 것이고 운이 좋은 일일 것입니다. 『깨어나십시오』 p48


죽을 때까지 자신의 호흡을 단 한 번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나'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이 말은 쉬워 보이나 이렇게나 어렵다. 더 정확히는 '상위자아'로 '나'를 인식해야 하는데 이건 경험적인 것이라 나의 글솜씨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책에서 끊임없이 깨달음을 주창하는 저자조차도 이것이 운에 달려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말을 할 때에 이것이 노력으로 가능한 것인지, 그저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것이 자기에 대한 관심에서든, 운이 좋아서든 나는 29살 창원에서 도덕경을 읽은 뒤 한 차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그때의 깨달음은 지식의 차원이었음을 몇 년이 흐른 뒤 깨달았고, 그로부터 또 몇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 깨달음이 지혜의 차원으로 내 삶 가운데 은은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판단하는 '나'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건 썩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만사가 나의 이기심(자기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래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이 주는 이 잔잔한 내적 평화와 행복이 참 좋아서 나도 언젠가는 이 책의 저자 앤소니 드 멜로처럼 누군가를 깨우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도덕경을 읽고 우주가 개편되는 경험을 한 것처럼,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깨어났으면 좋겠다. 아마 그것이 저자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 『깨어나십시오』는 도덕경처럼 상징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직관적이며 유쾌하게 진리를 설파한다. 누구나 한 번 읽어보길 강력 추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 모퉁이를 지나면 다른 세계가 펼쳐질지 누가 알겠는가? 당신이 깨어나 그동안 믿어왔던 모든 낡은 관념들이 완전히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념들이 세워져 당신의 삶을 더 탄탄하게 떠받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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