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 최진석
최진석 선생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입니다. 2017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도덕경을 읽고 그 철학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이 철학이 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노자의 심오한 철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고, 이때 읽었던 책이 최진석 선생님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선생님은 공자 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노자 사상을 설명해 주시는데, 정말로 쉽고 재밌게 술술 읽힙니다. 참 좋아하는 책이라 이후에도 여러 번 다시 읽었고, 지인에게 선물을 해줬던 기억도 있네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밀리의 서재를 뒤적이다가 최진석 선생님이 얼굴이 반가워 클릭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읽다가 중도에 관둔 책이 조금 있었는데 이 책은 어찌어찌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네요.
삶을 살아가는 눈이 언젠가는 다시 바뀔 수도 있겠지만 노장사상을 접한 이후로는 삶을 노장사상에 기반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30대 무렵 노장사상을 처음 접해 30대 후반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지금 이 눈은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삶은 날줄과 씨줄로 엮여있다는 노자 선생님의 가르침과 달리 어쩌면 날줄(도가 사상)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이 책이 술술 읽혔습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는 같은 책을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던데 최진석 선생님이 어떤 의도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쓰셨는지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됩니다.
선생님은 이 책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이란 무엇인지 고찰하시고 그에 대한 답을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단 한 줄로 요약하라면 저는 선생님이 쓰신 이 문장으로 대신할 겁니다.
철학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활동'이다.
-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최진석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철학 수입국에 머무르고 있으며, 스스로 철학을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하십니다. 우리는 선진국이 밟아간 길들을 답습하거나 모방할 뿐, 그 길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혁신적인 '질문'을 해야 하지만, '답변'을 하기에만 급급합니다.
철학이 이론이나 지식으로라도 소비되면 좋으련만 저 개인적으로는 요원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삶은 철학과 멀어지는 듯합니다. 아무튼 이 책은 그래서 저와 같이 철학을 이론이나 지식으로라도 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음 단계를 제시하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제가 노자와 장자처럼 이 삶을 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노자와 장자를 뛰어넘어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활동이고, 철학일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저 또한 고유한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겠지요.
기존의 문법이나 이념 혹은 신념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새로운 흐름이라는 것이 그저 낯설고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새로운 흐름은 기존의 문법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법을 형성해 나가는 물결인데, 익숙함에 빠진 사람은 기존의 문법을 가지고 그것을 해석하려 덤비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법으로 잘 읽히지 않는 것은 모두 이상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최진석
책을 읽고 기존의 문법이나 신념에 휘둘리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인류 역사는 예외 없이 소수(이상한 사람들)가 다수를 전복하고, 그 소수가 다수를 형성한 다음 다시 새로 등장하는 소수에 의해서 전복되는 과정으로 이어져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그것들이 튀어나올 정도로 내면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다.
-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최진석
그러기 위해선 내면을 가꿔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겁니다. 여기서 또 노자 선생님이 강조하신 '무위'가 떠오릅니다. 하지 않음을 행함으로써 결국 도와 덕에 이르는....
자꾸만 '함'으로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하려고 해서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태 이러고 있으니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무위입니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언젠가는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고, 또 언젠가는 새처럼 비상할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