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자의 의료비 그리고 보험

by 두두

「나의 질병코드」를 연재하는 나는 병원 VVIP이다. 어린 시절은 의료진이 되어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것이 꿈이었다. 관련 전공서적으로 면접을 준비하고 한 대학병원 앞에서 미래를 그리곤 했다. 여러 선택의 기로와 상황은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고 현재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환자가 되었다. 후회는 없다.


겉으로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으로 비치지만 나의 오장육부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젊을 때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 미리 챙겨야 한다는 말은 가볍게 넘긴 벌일까. 각종 약과 의료기기는 나의 필수템이 되었고 24시간을 관장하는 주인이 되었다.


목표는 하나, 골골 백세를 누리는 것이다.

; 골골거리며 백 세를 산다.

; 자주 병치레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을 돌보며 장수함을 이르는 말


골골 백세인 나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는데 바로 의료비이다. 가계부에는 의료비 하위 카테고리가 설정되어 있다. 단순 외래 외에 처방, 입원, 검사, 의료기기 렌트비 등이 포함된다. 한 번씩 지출 폭탄이 있는 날에는 벌어서 고치고 버는 듯한 챗바퀴를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는 흔한 필수 보험이 없다. 상해, 질병, 암, 실손 등이 해당된다. 다행스럽지만 아쉽게도 병을 먼저 발견하였고 치료가 시급했던 나에게 보험을 가입할 틈이 없었다. 뒤늦게 보험사에 문의하였지만 돌아오는 건 '보험가입 거절'이었다.


내 보험.png 출처: 생명보험협회 / 손해보험협회 '내 보험 찾아줌' (본문과 무관)
※ 보험사 사전 질문

1. 최근 3개월 이내에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 (건강검진 포함)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의료 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으신가요?
: 질병확정진단, 입원, 치료, 수술, 질병의심소견, 투약

2. 최근 3개월 이내에 마약을 사용하거나 혈압강하제, 신경안정제, 각성제, 진통제 등 약물을 상시 복용한 사실이 있으신가요?

3. 최근 1년 이내에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를 받고, 이를 통하여 추가검사(재검사)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4. 최근 5년 이내에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의료 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으신가요?
: 입원, 7일 이상 치료, 수술, 30일 이상 투약

5. 다음과 같은 질병으로 의사로부터 진찰 및 검사를 받고 이를 통해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 투약, 입원, 수술, 정밀검사를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 암, 백혈병,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심장판막증, 간경화, 당뇨병, 뇌졸중, 에이즈


기존 병력이 있고 장기간 약을 복용하는 나에게 위에 질문은 오답 투성이이다. 유병자 보험 상품도 있지만 높은 보험료, 제한된 보장, 높은 자기 부담금으로 보험 설계자 분들도 권유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험금은 결국 아파서 받는 돈인데 아프길 바라는 거 아냐. 괜찮아하고 말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자꾸 아른거린다. 어차피 일반/유병자 실손보험 가입이 불가하기에 일상 의료비 혜택은 받을 수 없다. 무엇이 나를 아른거리게 하는 걸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가족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나를 붙잡았다. 도움은 되지 못해도 부담은 주지 않길 바라는 마음. 비용은 올라갔지만 가능한 선에서 특약 채워 넣고 유병자 보험 한 건을 가입했다. 비로소 나의 심적 부담도 가라앉는 듯하다.


민간 보험 가입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개개인의 필요성, 조건으로 결정된다. 보험 가입 대신 나만의 '의료비 적금'을 하나 만들어서 매달 저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현재 하고 있는 방법이다.


나의 경우 (혜택은 줄고 보험비는 올랐다고는 하나) 실손보험은 가입하길 희망했지만 진료/투약 기록 등으로 거절된 사례이다. 가입을 원한다면 건강검진, 병원 진료 전에 텀을 두고 가입하길 추천한다. 일부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보험 가입 승인을 받을 수 있으나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그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점을 고려하여 보험을 이용하셨으면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프롤로그; 작은 조직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