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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23. 2016

알을 깨고 나온 J

2014. 4. 9.

모둠별로 '꼴찌를 위하여'를 바탕으로 즉석 음악극을 만들기로 했다.

모두가 활기차게 극을 짜는데 3모둠은 분위기가 냉랭했다.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각자 딴짓만 했다.


의욕이 넘치는 H와 만사가 귀찮은 W, 이해가 부족한 J와 Y.

함께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라 모둠이 만들어질 때부터 가장 걱정스러웠다.


옆에서 도와줘도 쉽지 않은 상황.

어느새 나도 답답한 마음이 들어 억지로 진행하도록 했다가 J가 단단히 토라졌다.

그 상태로는 진행하기가 힘들어 J를 옆 협의실로 보냈다.


J.

정말 맑고 순수한 아이다.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타인과 쉽게 관계도 맺지 못하고 감정도 성숙하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울 만큼.

여전히 우리 반에서도 아이들과 자연스레 어울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이면 교실 밖을 서성이곤 했다.

나에게는 호감을 표시하면서도 친구들에게는 그렇지 못해 안타까웠다.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되자 협의실로 가서 J를 안아주고 달래 줬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친구들과 함께 할지 물었더니 여전히 음악극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런 J가 안타깝고 속상했지만 구경이나 같이 하자며 교실로 데려왔다.


드디어 3모둠의 차례.

그 사이에 Y가 도움반으로 가버려서 연습한 아이는 H와 W 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W가 J를 달래며 함께 하자고 했다.

J는 못 이긴 척 함께 앞으로 나갔다.


"하나, 둘, 셋, 넷! 지금도 달리고 있지."

노래가 시작되자 H와 W는 소극적인 몸짓으로 연기를 했다.

그 순간, J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했다.

연습도 한 번 하지 않은 아이가 즉석에서 노래에 맞춰 끝까지 연기를 마쳤다.

놀라운 일이었다.


음악극 발표가 끝나고 가장 인상에 남는 사람을 뽑았는데 쟁쟁한 친구들보다도 J가 더 많은 표를 얻었다.

모두가 잘했지만 친구들에게 J가 가장 인상에 남은 것 같다며 축하의 박수를 보냈더니 J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때부터 J가 달라졌다.

"제가 할래요."

"저 알아요."

"저도 한 번 해볼래요."

"저도 하고 싶어요."


사람이 이렇게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광경을 마주할 때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J의 경우 극적이라고 할 수 없다.

전부터 끊임없이 온몸을 흔들어 껍질에 균열이 가도록 노력한 것을 알기에.

오늘, 비로소 답답한 알을 깨버린 것이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어 얼마나 좋을까.

새로움에 익숙해질 때까지 당분간 잘 지켜봐야겠다.

축하한다. J야.


추가 1.

하루가 지난 지금, J는 친구의 수학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심지어 반을 대표해 교내발명품경진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아침에 T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T가 몸이 좋지 않아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T가 중간놀이 때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운 마음에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어머니에게 학교 가고 싶다고 졸랐다고 했다.

아파도 가고 싶은 교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다는 말처럼 들려 무척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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