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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25. 2016

다수결도, 만장일치도 단점은 있다

2014. 4. 11.

이번 회장단 후보의 결의는 대단했다.

쉬는 시간에 모여 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의논하고, 그중 한 명인 T가 어제 결석하자 SNS으로 내일 꼭 나오라며 다짐을 받기도 했다.


안건을 결정하는 시간.

아이들이 일주일 동안 고민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불량식품을 먹지 말자, 급식줄을 바꾸자, 휴대폰 사용을 줄이는 규칙을 세우거나 금지하자.

세 가지 의견이 주로 나왔다.


불량식품을 먹는 것을 반대하는 아이들은 불량식품의 해로운 점을 설명하고 주변 사람들도 먹고 싶어 진다며 이유를 들었다.

휴대폰 사용과 관련해서는 강한 의견이 많이 나왔다.

현재 스마트폰을 자주 쓰는 아이는 몇 명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Y는 W와 함께 밖에서 놀고 싶은데 게임을 하겠다며 교실에 있는 모습이 싫다고 했다.

S 역시 우리 반 친구들이 어울려 밖에서 놀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한 의견만큼 공감하는 의견도 제법 나왔다.

강제로 하지 않게 하면  기분이 상할 수 있고, 오히려 더 하고 싶을 수 있으니 줄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으면 좋겠다 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안건에 관련하여 이야기가 오가자 교실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회장단은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가장 주장하는 수가 적은 불량식품을 안건에서 제외하였다.

그 순간, J가 안된다며 몇 차례나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판단하여 J를 복도로 불러내어 마음을 달랬다.

J는 친구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얼른 불량식품을 먹지 않도록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자 소수의 의견을 무시한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J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친구들은 불량식품을 먹자는 것이 아니라 우선 급한 다른 안건부터 의논하자는 것임을 설득하였다.


교실로 돌아와 보니 여전히 급식줄을 먼저 의논하자는 쪽과 휴대폰 사용을 먼저 하자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숫자는 급식줄 쪽이 더욱 많았지만 휴대폰 사용 쪽이 의견을 굽히지 않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게 안건도 정하지 못하고 회의 시간이 끝났다.

회의 중에 나온 발언 중에 훌륭한 것이 많았던 만큼 아이들도 나도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까지 회의를 진행했던 세 조의 회장단 후보들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각 후보들의 장단점을 떠올리게 하고 정식 회장단을 선출하였다.

예상외로 마지막 회장단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아이들은 가장 공정하게 의견을 모으려고 했으며 진행과 판서가 깔끔했던 점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회장단도 정해졌으니 회의를 좀 더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게 다듬어야겠다.

그러나 나 역시 여전히 어렵다.

다수결도, 만장일치도 최선의 방법이 아님을 알기에.

방법 자체보다는 아이들이 회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는지가 중요하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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