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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28. 2016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기

2014. 4. 14.

오전 내내 학생건강체력평가(PAPS)를 했다.

첫 종목은 제자리멀리뛰기였다.

시범을 보여주고 준비운동을 한 후 곧장 측정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서툰 자세로 폴짝 뛰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뒤쪽에서 스스로 연습을 반복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한 두 명이 하더니 나중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열심이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처음보다 10cm 이상 뛴 아이들이 대거 나온 것이었다.

심지어 30cm 이상 늘어난 아이도 몇 있었다.

아이들도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발자국을 보았다.


이어 오래 달리기-걷기를 하였다.

시작하기 전 강조한 점이 하나 있다.

지난 육상경기와는 달리 몇 명이 먼저 들어왔다고 끝내지 않는다고. 

모든 아이들이 들어왔을 때 종료되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라고.

체력이 다르기 때문에 기록은 제각각이었지만 측정이 끝났을 때, 모든 아이들이 숨을 몰아쉬고 땀을 뻘뻘 흘렸다.

정리하고 올라가는데 M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 이렇게까지 뛰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나는 빙그레 웃음으로 답했다.


애국주회를 마치고 곧장 보건실로 가서 체성분 분석을 했다.

번호 순서대로 남자가 먼저, 여자가 나중에 했다.

보건 선생님께서 남자아이들을 측정하는 동안 여자 아이들은 보건실 앞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지내라고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뭐지 하고 문을 여는 순간 엄청난 크기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무서운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내가 문을 열어 놀랐다는 것이었다.

요 녀석들.



체성분 측정이 제법 지체되자 이미 마친 아이들만 데리고 교실로 올라갔다.

이번 순서는 유연성을 알아보기 위한 윗몸앞으로굽히기.

기구를 본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못하겠다는 아이들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연습하도록 했다.

뒤에서 허리를 눌러주기도 하고 앞에서 손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측정을 마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다리 찢기 가위바위보를 했다.


마지막 종목은 윗몸말아올리기.

한 개도 하지 못한 아이들도 해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지금쯤이면 끝났겠지 하고 기록을 받아 적으려고 했는데 H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하고 있었다.

50개도 힘든데 60개가 넘어가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80개를 넘어가니 아이들이 큰 소리로 다 같이 세었다.

구십! 백! 백오!

모두가 놀란 가운데 자칭 라이벌 J와 Y의 눈빛은 번쩍이고 있었다.

이 녀석들도 이를 꽉 물고 끝까지 했다.

J는 113개, Y는 120개.

허허허허허허.

자기들 표현으로는 앞이 안 보이고 멘탈이 붕괴하는 시점이 있었다고 했다.

체력 측정인데도 그 지경이 될 때까지 하다니.



모든 측정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했다.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 점, 끝까지 최선을 다한 점이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그 말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역시 우리 반이 최고라며 합창을 했다.

오늘은 내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최선의 노력'이라는 아주 중요한 덕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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