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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30. 2016

너랑 절교야

2014. 4. 16.

마지막 시간은 '절교'였다.

절교가 뭐냐고 물었더니 S가 번쩍 손을 들었다.

"사진입니다."

응? 사진?


"그건 절규지!"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됐다.

뭉크의 명작, '절규'를 절교로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 그리고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지."

누군가 구석에서 조용히 말했다.

"어, 나도 절규 말하는 줄 알았는데."


웃음 속에 아이들의 절교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서 절교해본 사람?"

놀랍게도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절교한 친구와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도 많았다.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 남자 몰라요."

모 TV 프로그램의 성우가 생각났는지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난 이성이 싸울 때 이런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우선 남자에 대해 발표해봅시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자 아이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남자들의 싸움은 주먹다짐까지 할 정도로 싸워도 한 시간이나 하루가 지나면 같이 노는 것이다.

반대로 남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왜 여자들은 친구끼리 뒷담화를 하는 걸까 이다.


서로 숨겨둔 비밀을 이야기하는 마냥 부끄러워하면서도 무척 즐거워했다.

모든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서로에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이성에 대한 관심은 최고다.


남녀가 왜 그렇게 관계에 대해 반응이 다른지 짧게 설명하고 몇 가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었다.

특히나 여자 아이들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올해, 여러분들과 똑같은 5학년들이 절교에 대해 드라마를 만들었어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네요. 한 번 봐볼까요?"

(http://www.youtube.com/watch?v=AGEP2NtiqLg&feature=youtu.be)

자신들과 동갑내기 친구들이 만든 드라마라니!

아이들의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눈 한 번 돌리는 아이들이 없었다.


여자 아이 사이에서 농담 한 마디에 친한 친구들끼리 

절교하고 따돌림이 진행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상이다.

평소대로라면 영상을 보고 느낌을 공유하겠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 내용은 여자 아이들에게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들에게 선택을 하도록 했다.

남자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지, 따로 할지.

예상대로 따로 하겠다는 아이가 대부분이어서 남자아이들은 교실에 있게 하고,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협의실로 갔다.


모두가 둥그렇게 앉아 영상을 본 느낌을 이야기했다.

"내 상황인 것 같아요."

"우리의 모습 그대로던데요?"

"작년 일이 생각나요. 그때 참 힘들었었는데..."

Y의 눈가에 작은 외로움이 맺혔다.


"사실 작년에도 선배들이 겪은 일이야.

앞으로도 겪을 일이고.

심지어 어른들도 한단다."

"정말요?"

"그럼. 그런데 어렸을 때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더라.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있는 상태라면 뒷담화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건강하게 관계를 맺더라고."

"저희도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기회를 자주 가질 거야.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니, 아니면 비켜줬으면 하니?"

대부분은 나가줬으면 했고, H와 K는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둘을 안심시킨 후에 나는 조용히 교실로 갔다.


시간이 흘러 하교 시간이 다 됐음에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긴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니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급한 일이 있다는 아이들만 데리고 종례를 했다.


다른 아이들이 집으로 간지 한참이나 됐음에도 예닐곱 명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있어 찾아갔더니 활짝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항상 친구들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K도 웃음이 가득했다.


분위기가 진지하지 않다며 먼저 나온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가 반복된다면, 큰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을 배워갈 것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여자 아이들끼리 대화하는 자리를 꾸준히 가졌다.

추후 일기에도 나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불신과 불안, 긴장이 쌓인 상태에서는 아이들끼리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해에는 여자 아이들의 관계 문제가 한 해 내내 반복되었다.

좋아지다가도 나빠지고, 대부분 좋더라도 누구 하나는 은근히 따돌림 당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많은 걸 배웠겠지만 그만큼 상처도 깊었을 테다.

정말로 공교육에서는, 1년 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교사 혼자로는, 아이들끼리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게 맞지 않는 태도인 걸까.

아이들이 상처를 덜 받으면서 배울 수 있도록 교사가 안내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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