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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31. 2016

깨어 있는 시민이 된다는 것

2014. 4. 17.

어제 일어난 세월호 침몰로 인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학교에는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검은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학교로 갔다.


오늘은 두 번째 교통봉사가 있는 날이다.

지난번에 아이들이 교통봉사를 하는 것을 보고 경찰서에서 위험하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지난 교통봉사 모습은 https://brunch.co.kr/@sumsame/22 에 나와 있어요)

학교 측 입장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내 신념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아이들 옆에 학부모님이 서있는 것으로 학교 측과 합의를 봤다.


그러나 바쁜 학부모님이 아침에 봉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습도우미로 뽑힌 아이들의 학부모에게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긴 고민 끝에 학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제가 이 학교에 와서 의아하게 생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도우미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3년을 지내고 보니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습니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데,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봐 하지 않는 것입니다.

눈치를 보는 것이죠.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나는 학습도우미를 할 수 있는 아이,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싫어 저는 우리 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집안 걱정을 하지 말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학습도우미로 뽑히더라도 부모님께 부담이 가는 것은 하나도 하지 않겠다고요.

너희들 스스로 교통봉사를 하면 된다고 격려했더니

지금껏 하고 싶었지만 지원하지 못했던 아이들도 손을 들었습니다.


지난 3월,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교통봉사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일찍 나오는 것을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 것을 뿌듯해했습니다.

한 아이의 경우 3월 중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을 그때로 뽑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그때 학생과 선생님만 나와 교통봉사를 하는 모습을 본 경찰 측에서는 불안해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학교 쪽으로 연락이 왔더군요.

결과만 말씀드리면 이제 아이들과 저만 교통봉사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반드시 학부모님이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학습도우미의 부모님들이 나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또다시 좌절의 경험을 하게 하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교통봉사를 도와주실 분이 계실까요?

사실 그것이 가장 내 아이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내 아이만 행복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야 ‘내’ 아이도 행복해집니다.


총 8번이 남았습니다.

매번 나오시지는 않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아이들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시는 부모님께 이렇게 부담스러운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따스한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편지를 본 몇몇 학부모님께서 기꺼이 돕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학습도우미의 부모님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의 부모님도 있었다.

학부모님들은 직접 깃발을 잡지 않고 그저 아이들 곁에서 바라만 보았다.

혹시 아이가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스스로 당당하게 생각하며 교통봉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하셨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내 옷차림을 본 아이들이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어제 슬픈 일이 있었잖니."

"아..."


아이들과 함께 실종자 가족들이 울부짖는 모습을 영상으로 봤다.

그냥 글과 소식이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실제처럼 느껴졌는지 교실 전체가 숙연해졌다.

지금도 바다 밑에서 고통받을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눈을 감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서 울분과 안타까움이 솟구쳤다.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굴에 남아 있던 눈물을 얼른 닦아내고 수업을 시작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수업이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깔깔 대며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것이 아이들의 힘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도 웃으며 놀 수 있는, 아이 고유의 강인함.

그래, 너희들이 희망이다.


오후에는 권력과 언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대한 어렵지 않게 풀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정말 기우였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수업 내내 아이들은 집중했고 끝나고 수업 평가를 했더니 매우 만족하는 아이들이 다수였다.


마지막에 느낀 점을 한 마디씩 하도록 했다.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식한 시민이 되지 않겠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된다는 것.

잊기 쉽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덧붙이는 글.

나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다룰 때는 법원에서 판결이 났거나, 국가에서 인정한 내용만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된다.

판단은 아이들에게 넘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날 일기를 올리며 덧붙인 글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기를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집니다.

당분간 포스팅을 하지 않을까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들과 꿈을 키워가는 것.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더욱 지혜로워지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세월호 사건 전날,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3월 말에 직접 밀양에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해줬다.
국가 차원의 폭력, 기득권의 폭력, 왜곡된 언론에 대해서도.
사실 그것을 삶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먼 나라, 먼 시대, 아니면 남의 일처럼 느껴질 뿐.
그러나 누구든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곧장 국가 차원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가.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는 얼마만큼 더 아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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