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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Apr 12. 2016

염소는 왜 산으로 갔을까?

2014. 4. 29.

4교시 수업을 마무리했더니 15분 정도 여유 시간이 남았다.

아이들은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할까 하며 눈을 반짝였다.


"이번 시간에는 선생님이 동화책을 읽어줄 거야."

아이들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짐짓 모른 채하며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관심 없다는 듯 손장난을 치던 아이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귀를 쫑긋 세웠다.

내 무릎 앞까지 와서 고개를 내미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읽어준 책은 알퐁스 도데의 '스갱 아저씨의 염소'였다.

안전하게 염소를 키우고 싶었던 스갱 아저씨와 단 하루라도 좋으니 자유로운 삶을 원한 염소 블랑께뜨의 이야기다.

블랑께뜨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스갱 아저씨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위험한 산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늑대와 싸우다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다.


홀로 남은 블랑께뜨가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멈췄더니 아이들은 드라마가 끊긴 것처럼 아쉬움을 나지막이 내뱉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먼저 나머지를 읽어달라고 재촉했다.


마저 읽어주고 같이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이 블랑께뜨라면 산에 남을래, 집으로 돌아갈래?

지금 이 상황이 너희들과 비슷하지 않니?

스갱 아저씨를 부모님 또는 선생님이라 생각하고 블랑께뜨를 여러분들이라고 생각해볼래?


처음에는 산에 남겠다던 아이들도 토론이 진행될수록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의견을 바꿨다.

마지막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을 선택했다.


무엇을 선택하든 좋다.

그러나 그 책임은 온전히 그들의 것.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거나 부러워하는 것 역시 그들의 몫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두 개의 선택지만 있지는 않다는 것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또한.




방과 후에는 작년 제자 S가 상담을 해달라며 찾아왔다.

며칠 전부터 상담을 요청하더니 급한 모양이었다.

협의실로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이름뿐인 전교 회장이 되기 싫다고 학교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내가 몇 번 자극을 준 적이 있었다.

그러려고 회장이 된 것은 아니지 않니? 라고 물었다.)


기특한 마음에 칭찬을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아이들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고, 불편한 것을 바꾸겠다는 등의 이야기.


나는 S에게 학생들이 불편해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적어보라고 했다.

하나 쓰더니 더 이상 쓰지를 못했다.

내가 몇 가지 예를 들었더니 세 개를 더 썼다.

그러나 더 이상 글씨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를 바탕으로 고려해야 할 점을 들려주었다.

네가 그것들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

묵묵히 듣던 S에게 어떤 생각인지 물었다.


갑자기 S의 큰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당황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기다림 뿐이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아 어떤 느낌이 들어 우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진짜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도 모르면서 회장이 되겠다고 한 제가 부끄러워요."


참 고운 마음이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부터가 다른 것이라며 칭찬을 해주고 함께 더 고민했다.

나중에 돌아가기 전에 씨익 웃으면서 90도로 절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한참이나 내 입가에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디 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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