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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Apr 21. 2016

학습된 무기력을 넘어서기 위해

2014. 5. 8.

"선생님, Y는 왜 복도에 있어요?"

C가 중간놀이가 끝나기 전 교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복도로 나가보니 Y가 고개를 숙인 채 서있었다.

이유는 짐작이 가나 상담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이미 여러 방식으로 한 터라 효과도 기대할 수 없었다.


Y를 달랜 뒤,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첫째, 스스로 이 상황을 이겨내는 것.

둘째, 선생님과 친구의 도움을 받는 것.

셋째, 이대로 지내는 것.


Y는 고민하더니 모기만 한 소리로 두 번째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 목소리로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도 들을 수 없어 도와줄 수 없다며 좀 더 크게 말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Y는 약간 크게 대답했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의 시선을 모은 후 교실 앞에 크게 붙여져 있는 평화 약속을 함께 읽었다.


1. 우리는 괴롭힘 상황에서 서로를 도울 것이다.

2. 우리는 괴롭힘이 있을 때 서로에게 알릴 것이다.

3.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할 것이다.

4. 선생님은 평화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각각의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당당하게 '네'라고 하는 아이가 많은 반면

세 번째에는 누구 하나 지킨다고 하지 못했다.

네 번째를 물어보니 모두가 크게 그렇다고 해서 고맙다고 허리 숙여 인사를 했더니 아이들이 웃었다.


S가 생각하기에는 Y, H, L이 자주 혼자 있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L이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펄쩍 뛰었다.

나는 혼자의 시간을 원해서 홀로 있는 것과 같이 놀고 싶은데 홀로 있는 것은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셋에게 어떤 쪽에 해당하는지를 물었다.

L은 전자라 했고, Y와 H는 후자라 했다.


둘에게 교실에서 어떻게 지내고 싶냐고 물었다.

H는 함께 이야기 나눴으면 했고 Y는 같이 놀고 싶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별 거 아닌 일상이 이 아이들에게는 소망이었다.


둘이 어떤 감정일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많이 외롭고,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 우리 반에서 의도적으로 둘을 따돌리는 친구는 없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둘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 하고 물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나왔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많아 다가가기가 힘들다.

먼저 표현을 하지 않으니 어떤 상황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친한 친구랑 먼저 놀게 된다.


각각의 이유에 대해서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을 정리해줬다.

둘의 노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마지막에 다른 아이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해줬다.


아이들에게 갑작스레 등을 돌린 뒤 말했다.

"선생님이 이렇게 등을 보이니 말 걸기가 어떠니?

등을 돌린 사람에게는 말을 걸기가 어렵단다.

둘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너희들도 두 친구가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도록 노력해주렴."


고맙게도 수업이 끝난 후부터 둘을 챙겨주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

같이 가자고도 하고, 함께 놀자고도 하고.

둘의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몇 번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수년 간 친구들에 의해 받은 상처는 마음 깊이 새겨져 작은 일에도 다시 친구들과 멀어질까 두려워한다.

그런 아이가 오히려 답답하고 부담스러워 아이들이 거리를 두게 된다.

학습된 무기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주변의 따스한 돌봄이 장기간 필요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부디 일 년간 많이 단단해지고 자신이 소중함을 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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