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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Apr 20. 2016

늦지 않게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2014. 5. 7.

*오늘 수업 중 많은 부분은 <서준호 선생님의 마음 흔들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아침 일찍 달걀을 사들고 교실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웬 계란이냐며 궁금해했다.

'오호라. 아이들이 벌써부터 반응하네' 하며 기대했는데 웬걸, 수업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나는 즉흥적으로 내면을 풀어내는 것을 즐겨하는데 아침에서야 급하게 활동을 결정한 터라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부족했다.


원래는 아이들이 달걀을 자신의 아이로 느껴지도록 세심하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는데 말도, 음악도, 심지어 활동 순서도 뒤죽박죽이었다.

아이들은 몰입도가 떨어진 상태로 달걀을 받아 들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이 짜증으로 변할 뻔했지만 아이들의 반응이 오히려 당연한 것임을 깨닫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해보자며 굳게 다짐했다.


달걀을 보고 만져봄으로써 느껴보고, 직접 아이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달걀을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어 달걀을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며 해주고 싶은 대로 하자고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달걀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집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찾아 교실을 돌아다녔다.

그때 W가 실수로 H의 달걀을 쳤고, 땅으로 떨어진 달걀에서 속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H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H의 눈물을 본 아이들은 달걀이 이제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난을 치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진지한 표정으로 달걀을 대하는 아이가 늘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달걀을 대했다.

안전한 집을 만드는 아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아이, 따스한 담요로 감싸주는 아이, 사물함의 물건을 몽땅 꺼내어 달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아이, 편히 쉴 수 있게 침대를 만드는 아이.



중간놀이 시간에도 달걀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친구들과 달걀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가기도 하고, 더욱 세심하게 집을 고치기도 했다.

영어실에 다녀오고 나서는 달걀을 대하며 느낀 점을 바탕으로 내가 부모라면 자식을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 글을 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해줬으면 하는 바를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일이라고 썼다.


처음에 쓰기 주저하던 J는 어느 순간부터 쓱쓱 써 내려갔다.

가까이 갔더니 숨겨둔 이야기를 나에게 꺼냈다.

그러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발표를 할 때 J도 손을 들었지만 막상 일어나서는 말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그러다 나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했다.



각각의 문장이 울림이 있었는데 기억나는 것만 옮기자면 이렇다.

'나는 자식을 때리지 않겠다.

나는 배려심 있는 아이로 키울 것이다.

나도 부족한 것이 있고, 어른도 부족한 것이 있다.'


S는 마지막까지 정성 들여 쓰다가 조심스레 나에게로 와서 보여줬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오후에는 지금까지 활동하며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했다.


"이 편지는 부모님께 드려도 좋고, 스스로 간직해도 좋아요.

선생님은 돌아다니지 않을 거예요.

옆 친구도 보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마음 편하게 써도 좋아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은 한 글자씩 정성껏 써 내려갔다.

달걀을 바라보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혹시 발표할 친구 있냐고 물었더니 Y가 손을 들었다.

편지를 들고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는데 어느새 내 눈에도, 아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에는 세월호 사건 유가족 중 한 아버지의 인터뷰를 보았다.

"내가 아직 너에게 해줄 것이 많은데" 하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함께 울었다.


"아마도 저 아버지와 아들은 항상 사이가 좋지는 않았을 거예요.

여러분들도 부모님에게 서운할 때가 많죠.

하지만, 누구의 부모님이든지 이런 상황이 되면 여러분들을 애타게 찾을 거예요.

방금 아버님이 말하셨지만 여러분의 부모님은 뱃속에서만 10달을 품었어요.

여러분들이 몇 시간 달걀을 돌보는 것도 무척 힘들었는데 말예요.

일 년 내내 고생하시는 부모님에게 단 하루라도 따스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해요."


끝나고 아이들이 부모님께 편지를 갖다 줬는지, 선물을 챙겨줬는지 나는 모른다.

부모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지금 표현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너무 늦지 않을 때 표현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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