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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Apr 27. 2016

시험연습을 하더라도 즐겁게

2014. 5. 14.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시험연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니 그럴 수밖에.

어차피 하기로 한 거, 즐겁게 하자.


칠판에 시간표를 적었다.

놀이, 놀이, 영어, 놀이, 놀이.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이, 설마."

"선생님, 장난이죠?"

"저 시간표 선생님이 쓴 거 맞아요?"


의심 반, 기대 반.

그런 아이들의 눈망울이 무척 사랑스러웠지만 나중에 말해준다고 이야기하고 딴짓을 했다.

아이들은 애가 타는 모양이다.


시작종이 울리고 아이들에게 시간표에 대해 설명해줬다.

"예전에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이런 공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너희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미 학원이나 부모님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는 아이가 있는 것도 알고.

그러니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


처음에는 '초성퀴즈'로 이들이 공부한 내용을 상기하도록 했다.

알쏭달쏭한 초성을 보며 알아맞히는 재미가 쏠쏠했나 보다.

평소 학습태도나 성취도가 좋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순발력을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2교시는 '몸으로 말해요'

모둠별로 정지 장면을 만들고 다른 아이들이 맞추도록 진행을 했다.

영어시간이 끝나고는 '이구동성'을 했다.

앞에 나온 친구들의 입모양과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자꾸만 몸이 앞으로 나왔다.



모든 놀이에서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만 다뤘지만 워낙에 범위가 방대하다 보니 쉽지는 않나 보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몰입했다.


오후에도 놀이를 하려 했으나 여러 아이들이 휴대폰 사용을 건의해서 급하게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휴대폰 없이도 충분히 즐겁게 생활했지만 가끔 정보를 확인하거나 음악을 듣고 싶을 때 등의 상황에서는 답답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 휴대폰 사용을 중지하자고 했을 때 일주일로 기한을 정했으니 이제는 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과하게 사용하는 친구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의견도 많았다.

결국 간단한 확인 등을 위해서라면 하루 10분만 하는 것으로 의견이 수렴되었다.


추가.

갑자기 M가 Y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너무 의외의 상황이라 나뿐만 아니라 Y 조차도 놀랐다.

M에게 다가가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들었더니 수줍어하며 해맑게 웃었다.


사족.

내일은 스승의 날.

목포의 모든 학교는 재량휴업일로 정해 수업을 하지 않는다.

부담되는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을 수 있는 좋은 방침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는 스승의 날마다 모든 학교가 강제적으로 배구대회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가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여론이 걱정되어 몸을 사리는 상황일 뿐이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오늘 찾아온 제자들이 많았다.

내가 선물을 받지 않을 걸 알기에 편지를 들고 오거나 마음(!)의 선물만 준비한 아이들도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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