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6.
휴일까지 지나니 아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나 보다.
좀처럼 시험연습을 하지 않던 아이도 뭔가를 풀고 있었다.
수업을 시작하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시험은 왜 생겼을까?"
농담 반 진담 반의 대답이 몇 개 나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확인을 하고 모르는 것을 다시 배우기 위해서야.
물론 너희들에게 이 말이 와 닿지 않는 것은 알고 있어.
시험 결과에 따라 부모님이나 학원에서 너희들을 대하는 것이 다르니까.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함께 하는 동안은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험'에 요령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검토, 연필 굴리기, 공부하는 방법 등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시험지 안에 다른 문제에서 실마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고급(?) 방법도 나왔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시험에 대한 요령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시험연습을 할 만한 자료가 없는 친구들을 위해 문제지를 주기로 했다.
다만 선택은 자신의 몫으로.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스스로 또는 친구들과 함께 해결하도록 했다.
모든 과목을 선택한 아이도 있는 반면, 한 과목도 선택하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성적에 욕심이 있는 아이일수록 많은 것을 선택하고, 욕심이 크지 않거나, 성적을 포기한 아이는 적게 선택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지만 강제로 풀게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겪어내야 할 경험이기 때문에.
홀로 연습하는 아이도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 의논하며 푸는 아이들도 있었다.
연습할 분량을 자신이 선택한 만큼 집중도는 높았다.
일찍 끝낸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이유로 아이들은 앞으로도 최소 7년 이상 '시험'이라는 경험을 겪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충분히 시험에 대한 생각과 노하우를 쌓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세상과의 타협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