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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y 11. 2016

공든 탑이 무너져도 웃는다

2014. 5. 27.

우리 학교는 음악과교육연구학교면서 뮤지컬 운영학교이다.

공교육 현장을 잘 모르시는 분은 좋은 거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속사정을 아시는 분은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실 것이다.


이런 사업이 만연한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아이들은 전시 행정에 치여 여유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오늘이 그런 날 중 하나다.


극단이 찾아와 뮤지컬을 공연했다.

배우들은 도깨비가 되어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기계음을 거의 쓰지 않고 악기와 도구들을 이용해 직접 소리를 내는 기대 이상의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


교실로 돌아와 공연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재밌었다는 반응과 지루했다는 반응이 엇갈려 나왔다.

후반의 흐름이 아이들에게 와 닿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뽑힌 의자 쌓기!

아이들에게 해보고 싶냐고 묻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사실 그 의자들은 특수 제작한 것이라 우리 교실의 의자로는 불가능하니 교과서를 쌓아보자고 했다.

아이들 입에서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흐느적거리며 교과서를 가져오는 아이도 있었다.

이게 뭐야 하며 교과서를 바닥 가득 흩뜨려놓고 서로를 멀뚱히 바라봤다.

쌓기를 시도해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 교과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더욱 하기 싫어했다.


그때 한 모둠에서 된다, 된다 하고 외쳤다.


어라?

저기는 되네.

우리도 해보자.

오! 된다.

쌓다보니 재밌네!



아이들은 온갖 방법으로 교과서를 쌓기 시작했다.

다른 모둠의 교과서 탑을 보며 요령을 터득하기도 했다.


무너지면 다시 쌓고 또 무너져도 다시 쌓으면서 아이들만의 노하우도 쌓여갔다. 

탑은 점점 높아졌고, 어느새 아이들의 키를 훌쩍 넘는 위용을 뽐냈다.

후반에는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탑이 무너져도 이번에는 더 높게 쌓자면서 웃으면서 시작하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엉망진창이 된 교실을 정리한다고 제법 고생을 했지만 아이들도 나도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 넘어지면 한바탕 웃고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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