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토끼 Jul 12. 2023

두나의 불시착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

어느 날 외숙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현정아, 강아지 키워볼래?”

내내 개를 키우고 싶었던 나는 외숙모의 제안에 응했고, 그 길로 외숙모는 엄마와 약속을 잡아 부산으로 오셨다. 엄마는 외숙모의 손에 켄넬이 들려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거다. 외숙모가 오셨다는 얘길 들은 나는 그날만큼은 매일 저녁 참석했던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매우 작고 마른 치와와 한 마리가 있었다.

동물은 좋아했지만,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삶은 생각하지 않았던 부모님은 우리 집에 불시착한 이 한 마리 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셨다. 비쩍 마른 몸에 비해 큰 눈을 가지고 있던 이 동물은 서울에서 혼자 살던 사촌 언니가 키우다가 미국으로 가면서 외삼촌에게 보낸 개였다. 문제는 외숙모가 개를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는데, 2kg도 되지 않는 그 개가 무서워서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정도였다. 결국 외숙모는 지인에게 개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어떠한 이유에선지 그 개는 다시 외숙모네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외숙모는 유독 동물을 좋아하던 나를 떠올리고는 엄마 몰래 나와 은밀한 거래를 했다. 일단 집으로 외숙모가 개를 데려오기만 하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것이다.​


개가 우리 집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외숙모에게 우리가 일주일 동안만 보살피겠다고 말했다. 이미 포항에서 켄넬과 용품, 사료 등을 싸 들고 내려오신 터라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에는 개의 생김새도 한몫했다. 볼품없이 마르고 꼬리는 축 처진 게 동정심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분명 그때까지는 다음 주말에 외숙모가 부산에 오시면 개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부모님은 그사이에 외숙모가 더 좋은 입양처를 찾길 바랐다.

어쩌다 우리 집으로 온 개 ‘두나’는 첫날에는 자신과 함께 보내진 쿠션 위에서 잤다. 두나를 쓰다듬어보고 싶었지만,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꾹 참았다. 하지만 몇 분마다 거실에 있는 두나를 몰래 보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둘째 날에도 두나는 쿠션 근처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내가 ‘두나야’라고 이름을 불러도 시큰둥했다. 두나는 사흘 째가 되어서야 조금씩 집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내 방문 앞에서는 얼굴을 반만 내놓은 채 눈치를 보며 기웃거렸다.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두나가 우리 가족의 마음속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건.

약속했던 일주일이 되던 날, 두나는 엄마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개가 지나다닌 곳마다 바닥을 닦아내며 청소해야 할 게 아찔하다며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말했던 엄마는 어느새 두나를 ‘우리 막내’라고 명명하며 두 팔에 안고 있었다. 심지어 뽀뽀까지 해가면서... 그 길로 두나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두나가 가장 선호한 곳은 엄마의 팔뚝이었다.

두나는 실로 우리 가족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바깥에서 사람들과 놀거나 술을 마시길 좋아해 항상 늦게 집에 들어오던 나는 두나가 온 이후부터 조금씩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 사춘기라 매번 집에 오면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 버리던 남동생도 거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개털과 분비물에 민감하던 엄마는 두나 오줌 사진을 찍어 보내며 ‘두나는 오줌도 귀엽게 싼다’고 했다. 한참 뒤에 안 사실인데 아빠는 개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두나랑 같이 잤다.

이제 두나가 떠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여전히 마트에서 바나나를 보면 바나나 앞에서 무장 해제되던 두나의 표정이 생각나고, 거리에서 흰색과 갈색 점이 섞인 개를 볼 때면 두나와 닮았는지 개의 얼굴을 유심히 보곤 한다. 두나가 13년 동안 지내던 쿠션은 두나가 떠난 이후에도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 작년 가을쯤에 치웠다. 친정에 갈 때면 그곳에 두나가 있을 것만 같아서 빈자리를 쳐다보곤 한다. 엄마는 매일 아침 두나의 유골함 앞에 작은 사과 조각을 썰어서 올려둔다. 제사를 싫어하던 엄마가 두나를 위해서 일종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요즘도 종종 두나의 애착 담요를 꺼내 덮어보곤 한다. 더 이상 두나의 꼬순내는 나지 않지만 두나가 이 담요를 덮고 있었던 모습만큼은 선명하다.​


두나는 서서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나의 모든 것을, 우리 가족의 일부를 바꾸어 놓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