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첫날부터 이런 조합이라니. 처음 뽑은 형용사와 명사의 조합은 ‘졸린 경청’이었다. 어떻게 경청하면서 졸 수 있단 말인가. 경청이란 귀를 기울여 듣는 행위이고, 졸린다는 건 자고 싶은 느낌이 든다는 것인데. 하지만 생각해 보니 오늘 나는 졸린 경청을 경험했다. 바로 아침에 하는 윤독 모임이 그것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윤독 모임은 7월부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곳에서 만난 학인들인데(나는 이 학인이라는 말이 너무나 써보고 싶었다!), 글쓰기 수업이 끝난 이후에는 독서 모임을 하며 꾸준히 만나는 친구들이다. 우리의 첫 번째 낭독 도서는 <세계 끝의 버섯>이었다. 이 낭독 모임이 생긴 것은 정말 충동적인 나의 한 마디였다. “저는 이 책이 이해되지 않아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그냥 읽으면 안 읽을 것 같아서 낭독 모임 하고 싶어요.” 누군가와의 약속이 없으면 분명히 이 책을 재독하지 않을 사람이 나란 것을 알기에 강제적인 장치를 만든 것이다. 아무도 함께해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친구들은 순순히(?) 이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고, 그 덕분에 매주 월요일 아침은 친구들의 목소리 덕분에 잠이 깬다. 열심히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만 계속 몽롱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졸린 눈을 비비며 책장을 넘기고 귀를 기울여 듣다 보면 어느새 잠이 깨고 목도 풀린다. 가끔 우리의 윤독 모임에 참여하는 친구네 고양이의 모습을 보면 조금 더 빨리 잠이 깬다.
처음 윤독 모임을 시작할 때는 6시 30분에 모였지만 우리는 2주 만에 시간을 옮기기로 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6시 30분에 낭독을 하다 보니 월요일 하루가 너무 피곤해진다는 이유였다. 그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친구 중에는 나도 있었다. 주말은 평일보다 항상 늦게 잠들게 되고, 6시에는 일어나야 밥을 먹고 윤독 준비를 하는데 늦게 자는 날에는 5시간도 채 자지 못한 채로 윤독 모임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졸린 경청을 하곤 했다. 3주 차부터는 30분 뒤로 시간을 미뤄 아침 7시에 만나기로 했다. 시간을 옮기니 출석률이 좀 더 좋아졌고, 개인적으로는 집중도 더 잘 되었다. 역시 무슨 일이든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은 세상에 없다.
온라인으로 만나서 책을 낭독하는 행위는 무척이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니, 소리 내서 책을 읽는다는 경험 자체가 너무나 생소했다. 이렇게 소리 내어 읽는 건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인 거 같은데? 새로운 경험에 사족을 못 쓰는 나에게 윤독은 도파민이 싹 돌게 만드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게다가 월요일 아침에 시작하는 윤독은 내가 한 주를 꽤나 성실하고 멋지게 시작하는 착각이 들었고, 그 착각 덕분에 더 활기차게 살아갈 원동력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낭독 모임은 두 계절을 넘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우리는 지금 두 번째 책인 <떠오르는 숨>을 읽고 있다.
오늘 아침의 윤독 모임은 조금 특별했다. 집이 아닌 본가에서 참여했기 때문에 맥북 대신 아이패드를 사용했다. 매일 아침 윤독 방을 생성해 링크를 전달했는데, 아이패드는 그 방법이 달랐다. 앱을 설치해야 했고, 창 구분이나 탭이 PC 환경과 달라서 낯선 탓에 조금 버벅거렸다. 기기뿐만이 아니다. 의자도, 분위기도, 바라보는 풍경도 달랐다. 본가 식탁에 앉으면 부엌에 있는 유리창을 통해 바다가 보인다. 윤독을 준비할 때는 어두운 데에 건물과 다리의 불빛만 보이다가, 끝날 때쯤에는 맑은 바다와 다리가 보였다.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다.
*윤독: 여러 사람이 같은 글이나 책을 돌려 가며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