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은 당장 필요한 세간살이 몇 가지만 남겨두고 안동으로 내려가셨다.
곳곳이 깨지고 갈라진 시멘트 계단을 올라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면 아이보리색 아파트 벽은 온갖 얼룩 투성이라 손 닿는 것도 싫었다. 그래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새 벽지, 새 장판, 새 싱크대 그리고 방문과 문틀까지 하얗게 칠해진 집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신혼살림을 준비할 때 지방 계신 엄마는 농사일로 바빠 올라오지 못하셔서 남편과 둘이서 다녀야 했다. 가까운 전자랜드에서 전자제품을 고르고 가구를 둘러보러 갔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남편이 뜬금없이 한마디 던진다.
"나는 너한테 결혼하자는 말도 안 했다."
무슨 뜻이지?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 생각해보니 나는 프러포즈를 받은 기억이 없다. 인터넷 봉사동호회에서 만나 남편을 알고 지낸 지 2년째, 첫 데이트 때부터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던 남자다. 화가 났다. 드라마를 보면 결혼 준비하면서도 프러포즈 잘만 하던데 그러면 지금이라도 하든가.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나는 결혼하자는 말도 안 했는데 너 지금 가구 사러 다니느라 바빠 보인다.ㅋㅋㅋ'이 말인가? 남 이야기하듯이.
우리 첫 만남의 장소는 결혼 전 시골 우리 집이다. 많은 동호회 사람들 틈에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던. 너무나 지루해 보였던 이 사람. 솔직히 말하면 내 관심 밖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채팅창을 통해 이야기를 나눌수록 재미는 좀 없지만 이 남자라면 평생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 벼락같은 말인지. 화가 난 와중에도 할 일은 해야 해서 뾰로통 입이 나온 채 가구를 마저 다 고르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프러포즈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억지춘향도 힘겨운 남자다. 기대를 안 하는 것이 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때 이미 알아버린 것 같다. 나는 포기가 빠른 여자였다. 좀 더 끈질기게 싸웠더라면 지금 좀 달라졌을까.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남편에게 각종 기념일에 대해 실망을 한 일은 없다.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 다가올 때마다 내가 미리미리 이야기해주고 '그날 식구들이랑 같이 밥 먹을 거니까 일찍 오라'거나 '내 생일이니까 이번에 나 원피스 하나 살래'라고 셀프로 챙기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옆 길로 샜다. 내 기준. 태어나서 처음 만난 특이한 스타일이라 남편에 관한 이야기라면 시리즈라도 쓸 수 있지만 참아야지. (글을 쓰다 보면 자꾸만 남편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안방 하나, 작은 방 하나, 거실 겸 부엌. 욕실엔 세면대도 없고, 머리를 감으려면 변기 위에 세숫대야를 올려놓아야 하는 손바닥 만한 화장실. 그러나 작지만 아담한 내 집이었다. 남편과 둘이 소꿉놀이하듯 시장도 보고, 밥도 지어먹으며 그 작은 공간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결혼 후 고향을 떠나 상경한 나는 결혼한 지 한 달이 지나자 향수병에 걸려 어느 날 저녁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 모습에 당황한 남편은 친정에 다녀오라 해주었다. 그렇게 한 번씩 친정에 갔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나는 이 집이 매번 낯설었다. 현관문만 열면 모든 게 한눈에 다 들어오는 이 집은 잠시 놀러 온 민박집 같았다. 그러나 이 집은 남편과 함께 팔순이신 아버님도 살았고, 바쁜 막내 시누의 젖먹이 막내아들과 어머님, 나와 나이가 아래위로 한두 살 차이 나는 조카 둘. 그렇게 여섯 명이 살던 집이었다. 작다고 할 수 없다. 우리 집 보다 작은 원룸에서 시작하는 부부들도 있고, 반지하 셋방에서 시작하는 부부들도 있다. 다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나의 친구들의 집과 우리 집은 어쩔 수 없이 자꾸 비교가 되었다. 나중에 두고두고 기뻐할 일이 생길지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