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마녀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인어공주>
막내 인어 공주님이 문어마녀를 찾아왔어요.
육지에 사는 왕자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며 인어 공주도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죠.
문어마녀는 인어가 사람이 되면 다시는 이곳 바다로 돌아올 수 없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공주는 가족들과 헤어진다는 건 슬프지만 대신 사랑하는 왕자님이 곁에 있을 거라고 했어요. 다리를 만들기 위해선 공주님의 목소리가 필요한데 그러면 공주님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될 거라고 했죠. 공주는 왕자님만 볼 수 있다면 말을 할 수 없어도 좋다고 했어요. 그리고 가장 어려운 문제가 또 있었어요. 공주님이 인간이 되어도 왕자님과 결혼을 하지 못하면 공주님은 비눗방울이 되어 사라져 버릴 거라고 했죠. 공주는 왕자님도 분명 공주를 사랑할 테니 결혼은 문제없다며 재촉했어요. '아. 어리석은 공주님...' 바닷속에서도 늘 인기가 많은 인어공주는 왜 하필 인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어요. 문어마녀였다면 바닷속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하긴 목소리가 없어도 누구든 공주를 보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뵈길 거예요. 그러니 왕자가 틀림없이 공주를 사랑할 거라고 자신감에 차 있지요. 문어마녀는 그런 공주에 비해 민 대머리에 머리와 다리뿐인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누군가 자기에게 다가 오기라도 할라치면 얼른 바위 속으로 숨어버리거나, 먹물을 뿜고 줄행랑을 쳐 버리죠. 그리고 다들 문어마녀가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았다고 오해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공주의 목소리는 꼭 필요한 재료였거든요. 물론 남은 목소리는 문어 마녀가 조금 챙겨놓았어요. 이쁜 목소리를 가지고 싶었거든요. 그럼 조금이라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시간이 제법 지난 어느 날 막내 인어 공주의 언니들이 또 문어마녀를 찾아왔어요. 호언장담하던 인어공주의 말과는 달리 왕자는 인어공주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언니들은 인어공주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어요. 어렵긴 했지만 방법이 아주 없진 않았어요. 공주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칼로 왕자를 죽이는 방법이었어요. 언니들은 망설임 없이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칼을 가지고 돌아갔어요.
문어마녀가 어두운 바위틈 안에서 울고 있어요. 온몸이 들썩거리지만 바위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어요. 말랑한 문어마녀의 몸만 더 넓어졌다 작아졌다 할 뿐이었죠. 문어마녀가 울음이 그칠 때까지 바위는 잠자코 기다려주었어요. 문어마녀의 울음이 잦아들자 바위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문어마녀야 너 지금 많이 힘들구나."
"응."
"왜 힘든지 말해 줄 수 있겠니?"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상냥한 막내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가져봐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고, 아름다운 언니들의 머릿결도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 나는 내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생각했구나. 나랑 생각이 다르네. 나는 네가 많이 이쁘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너는 정말 좋은 문어야."
"나를 위로하려고 한다면 그만둬."
"아니. 너를 위로하려고 괜한 말 하는 게 아니야. 너는 너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구나. 너에겐 변화무쌍한 색깔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 그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니? 숨바꼭질을 하면 아무도 너를 찾지 못할 걸. 그건 네가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는 거야. 그리고 네가 똑똑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 그러니 멀리 사는 인어공주들도 너를 찾아 여기까지 왔잖아. 이건 너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너는 정말 착한 문어야. 누구보다 인어공주를 걱정해줬거든. 간혹 너를 오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
조용히 바위의 말을 들고 있던 문어마녀의 색깔이 점점 환해집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어요. 왜 나를 보지 못하고 다른 이들만 바라보며 우울하게 살았을까 후회가 됩니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세상이 환해 보입니다. 문어는 긴 다리들을 활짝 펴고 바위를 조용히 안아주었어요. 그리고 조용히 말했어요.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