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집만 눈에 들어와

집을 촬영장소로 빌려주면 생기는 일

by 오늘을 살다

두 번째다.

우리 집을 촬영 장소로 빌려주는 일.


둘째가 집 좀 빌려도 되겠냐 물었다.

또래 친구들 다들 대입 준비로 바쁜데 학생부에 한 줄 쓰지도 못하는. 대입에는 그다지 쓸모없는.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러나 본인 인생행로에 대한 방향성을 찾는 일이니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여하튼 두 번째로 오케이. 한번 튕겨볼 걸 그랬나? 조금만 비싸게 굴어볼 걸 그랬나? 너무 쉽게 또 오케이 했나? 허락해놓고 망설였다. 그러나 함께 촬영하는 친구네 집들은 안 된다 하고 어디 가서 촬영지를 찾겠나 싶었다. 지난 해 보니까 촬영 장소를 돈 주고 대여했다던데. 애들끼리 용돈 각출해 장비 대여해서 만드는 영상. 기부금이나 찬조금까지 내면서 만들라고 할 생각까진 아니니 장소를 대여해 줄 수밖에.


지난번 촬영 때 있었던 일을 기억하면서 준비하면 이번엔 좀 수월하겠거니 생각했다.

평소 "청소 좀 하고 살지?" 한마디 하면 "사람 냄새!"라고 단답 하던 녀석이었다. 그러나 촬영 장소가 본인의 방이 되니 새벽 4시까지 잠도 못 자고 방청소도 했었다. 요런 장점도 있었다.


손님이 온다 하니 거실도 남의 집처럼 깨끗해졌다. 이건 내 몫. 이번엔 수저 꺼내는 장면이 나와서 부엌도 나오고 다용도 실도 잠깐 나온단다. 오케 오케 알았어. 열심히 청소했다.


"냉장고 안도 청소해야 돼?"

"아니! 부엌에서 그쪽으로 잠깐 보이기만 할 거야."

촬영 당일 아침에 일어나 깨끗이 청소해 놨더니 자고 일어난 녀석이 고마운 표정 하나 없이 한마디 한다.


"부엌이 왜 이렇게 깨끗해! 이러면 안 된다고. 왜 맘대로 컨셉을 잡아?"


헐... 너무한 거 아냐? 네가 내 입장되어봐라. 잠깐 왔다가는 손님이 와도 청소하게 되는데 영상으로 두고두고 남는다는데 깔끔하게 청소 안 하게 되니? 일단 너의 의견 접수하고 보여주고 싶은 깨끗한 집에서 원래 우리 집의 중간쯤으로 다시 컨셉을 잡아 정리했다.


우리 집 거실은 사실 좀 아주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다. 장식이 많다. 돈 주고 산 게 아니고 내 손을 거쳐 태어난 것들이 대부분이라 어디 창고 구석에 모아두기 보다 아이들 잘 보지도 않던 전집 책들이 있던 자리에 책을 없애버리고 하나둘 올려놓은 것들이다. 괜찮을까 물으니 각도를 잘 잡아 보겠단다. 그래그래. 이번엔 거실 위주로 찍는다 하니 기타 여기저기 너저분한 것들을 왕창왕창 치웠다. 녀석이 치던 통기타랑 베이스 기타, 앰프까지 방으로 들어가고 나니. 우리 집 아닌 거 같단다. 내가 보기에도 좀 그런 거 같네. 대신 다른 방들이 잠시 창고가 되었다.


촬영 장면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있으면 신경도 쓰일뿐더러 4인 이상 집합 금지 상태라 간당간당 인원을 맞춰 촬영하여야 하므로 아예 시나리오 쓸 때부터 최소 인원 출연 형식으로 쓰고 있었다.

큰 애는 공부하러 가서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우리 부부는 반강제로 데이트를 했다. 갈 데가 없어 여기저기 헤매다 도서관에 가서 졸았다. 도서관도 끝나고 차 안에서 촬영 끝나기만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오니 장비 반납하러 갔을 녀석이 집에 있었다. 오늘 너무 힘들어 쓰러질 뻔했단다. 애썼네.


좋아하는 일에 재능도 조금 있었던지 지난번 제 방에서 찍은 영상이 공모전 예선을 통과하게 되어 이번에 찍은 작품은 본선 진출작이라고 했다. 지난 번은 좀 쉽게 촬영했다면 이번은 여러 이유로 인하여 준비가 미진한 관계로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 했었다. 아침에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대충 편집이 끝나간다며 지난번 촬영 영상을 보여주었다. 배우보다 집이 눈에 더 들어왔다.


"현관문에 시트지 붙이길 잘했네. 아니 커튼 왜 저렇게 돼 있어?"

"괜찮아. 사람들은 커튼 신경도 안 써."

"악! 냉장고 열었어? 냉장고 안 열어 볼 거라며! 아 냉장고 청소도 할걸."

"냉장고 안은 화면에 안 나와."

"부엌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뭐라 하더니 부엌은 안 나왔네."

"수저통을 거실로 가져가서 촬영했어."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냉장고. 요즘 이런 냉장고 안 쓰지 않나? 다들 양문형 냉장고 쓸 텐데 너무 없어 보이는 거 아냐?"

"괜찮아 괜찮아 어울려 어울려!"

"맞다. 동생이랑 언니랑 둘이 살면 너무 좋은 냉장고는 안 어울리겠다."

"원래 엄마 역할인데 너무 젊으셔서 언니로 바꿨어."

"그러기엔 거실은 상대적으로 좀 넓어 보이네."

(현재 우리 가족 생애 젤 큰 집 33평 살이 중.)

"지방에 가면 저렴하고 넓은 집들도 많아."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지방도 비싼 데는 우리 집보다 훨씬 비싸."

(우리 집도 서울 아닌데. 주위 아파트가 너무 올라서 이사는 못가.)

"그리고 배우들이 다 서울말 쓰니까 지방 같지는 않은데."

"서울 살다 지방으로 이사 갔겠지."

또 남편이다.


총평.

촬영 당일 마음 같이 촬영이 진행되지 않아 힘들었다더니. 뭐. 생각만큼 망작은 아니네. 잘했네. 수고했다.


어제도 촬영 다녀오고, 오늘도 교육받으러 가고, 공부는 언제 할 거냐 물으면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는 너를 불안한 듯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공부는 들킬까 봐 몰래 숨어서 하는 거지?"


라고 참다참다 한마디 했더니 버럭 거리고 한동안 뚱해있는 너.(전엔 안 그러더니 요즘 안 하던 짓한다. 컸나 보다.)

고3 되면 그땐 진짜 공부할 거지?

너 좋아하는 일. 해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안 올까봐 걱정돼서 나도 모르게 자꾸 말이 나와.

다 알아서 할 건데 왜 자꾸 신경 쓰느냐 그러는데..


에휴..

너도 엄마 돼봐라.

나 정도면 양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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