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보낼 준비를 하며 너에게 보내는 편지
너에게 보낸다
- 나태주 -
하늘이 좋다
구름이 좋다
맑은 하늘
맑은 마음
너에게 보낸다
나 여기 있다
너도 거기 잘 있거라
우리는 가끔씩
안부가 필요하다
소식이 필요하다
하늘이 좋다
바람이 좋다
이 좋은 바람
이 좋은 하늘
오래전 사다 두었던 편지봉투에 주소를 쓰려다 머뭇거렸어.
우체국을 통해 보내는 편지봉투용은 아녔던가 봐. 편지봉투의 무늬며 색깔이 너무 짙은 것 같아.
주소 확인하실 우체부 아저씨의 수고로움을 덜어드리고 싶어서 네임펜으로 두껍고 크게 글씨를 썼더니 이쁘지 않은 글씨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네. 지금 쓰고 있는 이 까만 글씨들도 마음에 들지가 않아. 보내지 말아 버릴까. 흠... 왜 이리 잘하고 싶고, 이쁘게 보이고 싶고, 그래서 망설이다 안 하게 되고... 언제까지 이럴까.
이제 이런 욕심들에선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가 욕심 없는 사람은 발전도 없는 법이지 생각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편지를 마무리해서 너에게 보내고 말 것이야. 중요한 것은 글씨가 아니니까. 그걸 항상 잊지 말아야지.
멀리 매미소리 우렁차게 들려온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는 듯이. 우리도 매미처럼 후회 없게 살아야 할 텐데.
유난히 덥고 길게만 느껴지던 여름이 조금씩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어. 이즈음. 별 내용 없는 편지 한 장이라도 멀리서 너를 향해 보내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날이 그날 같을 너의 지루한 하루에 어제와는 다른 작은 즐거움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너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이는 동안 나의 하루도 어제와는 달라져있다.
시 한 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가을을 맞이하자.
2021. 여름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