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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Oct 25. 2022

첫 학기, 첫 주.

지금의 동기부여가 졸업 때까지 이뤄지길.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했지만, 내겐 어떤 수업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방향성을 탐구하는 목적이 더 강했다.


월요일부터 당장 1년 위의 멘토와의 약속을 잡고 만났다. 멘토로부터 온갖 정보를 다 끄집어냈다. 이 수업은 어떻고, 시험이 어떻게 되고 교수는 어떻고 등등. 당장 작년에 수업 들었던 학생의 따끈따끈한 내용을 다 흡수하면서도 한편, 그의 이야기만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으므로 비판적인 사고도 유지했다.


그의 요지는 에너지 관련된 수업은 너무나도 괜찮은데, 나머지 것들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굳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추상적인 수업과 듣고 싶은 에너지 수업 시간이 겹쳤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선 겹치더라도 다 들어볼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실행으로 옮겼다. 그렇게 5개의 필수과목에, 두 개의 수업을 더 땡겨 들으니 화수목 시간표가 꽉꽉 차버렸다. 만만치 않았달까.


한 주가 지난 이 시점. 모든 수업을 다 듣고 생각하기를 내 판단이 맞았단 걸 느꼈다. 굳이 저 수업에 다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이번 학기에 조금 고생하더라도 에너지 관련된 과목을 더 들음으로써 기본을 확실히 다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렇게 하고, 다음 학기에 프로그래밍에 집중했을 때, 1년이 지난 시점에 더 들어야 할 수업은 거의 없고, 조금 더 여유롭게 프로젝트나 논문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시간이 갖춰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나름의 계획을 구체화했다.


아직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고 시스템도 잘 모르는 유학생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옆에서 듣다 보면, 1년 이미 경험하고 오니 여러 개념도 익숙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그런지 더 독일인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게 훨씬 편하다고나 할까.


이곳의 강의는 전반적으로 너무 훌륭하고, 특히 에너지 관련된 수업은 탁월하다. 전에 있었던 뮌헨공대 (TUM) 보다도 훨씬. 나는 느꼈다.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거라고. 학생들의 수준도 꽤 높다. 자극이 되고 있다. 좋은 점이다. 나의 멘토는 NYU에서 학사를 했는데, 본인은 그렇게 비싼 학비를 냈음에도 이곳보다 더 떨어진 교육을 받았고, 같이 공부한 이들도 그렇게 훌륭하지 않았다고. 그는 그러면서 NYU가 미국 내 최고의 대학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가보진 않았지만,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로 했다.


Solar Energy.

강의하는 교수님은 50대 중후반의 보이는 나이 지긋한 분으로, 이 학과 중 학계에서 제일 유명한 교수 중 한 명이다. 그동안 이 정도로 유명한 교수의 수업을 직접 들은 적은 없었다. 꼭 유명하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뭐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첫 수업. Solar Energy라고 해서 처음에는 그저 PV와 Concentrated Solar Power 정도 다루겠거니 했는데, Solar Thermal. Heat Pump, Storage까지 다루는 데다가 이를 모두 합쳐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델을 만들 거라고 한다. 마지막 시간엔 태양광 연구소 방문도 예정되어 있다. 이 수업을 들어야만 다음 학기에 다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이유가 와닿는다. 그냥 필요한 모든 기본 개념을 거의 배운다고나 할까.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먼저 태양의 에너지, 우리가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태양열이 얼마나 큰 에너지인지 설명하며 현재 남아 있는 화석연료의 에너지 총량과 비교를 했는데, 뭐 여기까지는 사실 클리셰라면 클리셰다. 사실은 아무리 그 에너지가 막대하다고 한들, 우리가 이를 다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에 대한 이론적 한계도 명확하다. 흥미로웠던 건 교수는 본인이 에너지 관련된 수업을 학교에서 들을 때만 해도, 화석연료의 양에 대해 이게 부족하니 다른 에너지를 강구해야 한다는 개념이었지, 지금처럼 기후변화 때문에 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개념은 아니었다며, 지난 수십 년 간 큰 변화와 진전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본인의 할아버지는 탄광 산업에 종사했는데, 당시 석탄에 관해 책을 쓰셨다고 했다. 그 내용의 요지는 전세계 석탄 매장량을 정리해 그 매장량에 따라 국가의 국력이 정해질 거라며, 석탄이 최고라는 이야기가 전부였다고. 마지막 장쯤에 석탄이 아마도 한정된 양일지도 모른다. (“Maybe Coal is limited.”) 정도만 한 줄로 적혀 있다고. 그나마 그게 있어서 어디냐고 하면서도, 그런 세상에서 지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는 게 주된 이야기였다.


다음은 Fraunhofer 연구소에 대한 소개. 노벨상을 받고 싶으면 막스플랑크 연구소로 가고, 실제로 세상에 써먹는 걸 더 하고 싶으면 프라운호퍼로 가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Fraunhofer 태양광 연구소는 40년 전에 처음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60명이었는데, 지금은 1200명의 직원을 둔 90억 유로의 예산, 즉 12조 예산의 세계 각지에 있는 프라운호퍼 연구소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라고. 첫 번째는 이길 수가 없단다. 이는 바이에른 주에 있는 Erlangen에 있는 곳인데, Integrated Circuit을 연구한다. 이곳에서 MP3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 흥미로운 건, 이 연구소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연구하다가 Solar Cell을 처음 만들었던 독일 연구자가 독일로 오면서 Solar Cell을 연구해야 한다고 경영진에 굉장히 강하게 어필했는데, 그 사람이 힘이 세서 망정이었지 애초에 그때만 해도 주변 모두가 미쳤다고 혀를 쯧쯧 찼다고 한다. 40년이 지나 제일 큰 먹거리 산업이 됐으니 대단하기도 하다. 교수도 프로필을 보니 이곳에서만 꼬박 30년을 일했다. 30년동안 참 많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그에겐 그동안 이룬 많은 성과가 보이지 않았겠는가.


Made in Germany의 유래. 그 배경은 산업 혁명의 시작. 첫 증기기관은 제임스 와트가 발명했다고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사실 그보다도 먼저 탄광에서 쓰고 있었다고 한다. 그 기계의 효율은 0.6%였고,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의 효율은 5%였다고. 교수는 대부분 발명가는 가난한 편이었는데, 와트는 마케팅에도 뛰어난 감각이 있어 탄광회사에 내 증기기관 공짜로 빌려줄 테니 마음대로 쓰고, 대신 좋은 효율의 증기기관으로 인해 남는 석탄은 본인한테 달라고 했단다. 회사 측에서는 ‘물론이지’하고 넙죽 받아 썼다고. 그랬기에 와트는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더 재밌는 점은 이렇게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성공하자, 독일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려고 했는데, 조잡하게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등. 이처럼 모조품을 독일에서 만들어서 영국으로 싼 가격에 다시 역수출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에 분노한 영국에서는 독일에서 만든 증기관을 ‘구린 독일제’라며, Made in Germany를 붙이게 했는데, 이게 독일제의 시초였다고. 교수는 수십년 전 중국이 하던 걸 원래는 독일에서 했고, 그 독일제가 이제는 반대가 되지 않았느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믿거나 말거나.


교수는 이곳에서 다룰 모든 수업이 이것에 관련해서는 최고의 기관에서 듣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걸 하려고 이곳에 왔지.’ 하면서 수업 듣는 내내 기대를 감출 수 없었다. TUM보다도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다. 다시금 내 선택이 옳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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