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독 바다청년 Oct 25. 2022

적응되지 않는 끔찍한 독일의 행정

그리고 나의 어리석음

이곳에 온 지 1년이 지났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오히려 그런 과신이 화를 불렀다고나 할까.


독일에서 수입이 없는 외국인(유학생 등)은 1년간 재정보증을 해야만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정해놓은 최저 생활 자금은 매월 861유로. 그니까 861유로* 12개월 = 10,000유로가 조금 넘는데, 현재 환율로는 1500만원 쯤 된다. (요즘 원화가 너무 약해서 안타깝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


어찌됐든, 이 돈을 내가 그냥 들고 있는 걸로 충분한 게 아니라, 이를 Sperrkonto, 영어로 번역하면 Blocked Account, 잠겨있는 계좌에 돈을 1개월 동안 정해진 돈만 받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에 묶어놓아야 한다. 이 계좌에서 매달 정해진 돈만큼만 나오니, 독일에선 “얘가 12개월 동안 먹고 사는 돈은 있구나? 1년 체류 허가를 줄게.” 이런 개념이다. 물론, 여기서 부가적인 수입이 있는 경우, 이를 제외한 돈을 가지고 있으면 허가해줄 수도 있다.


뭐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1년이 지났고, 작년에 넣어놓았던 돈을 다 쓴 데다가, 이제는 앞으로의 체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 그 계좌에 다시 돈을 부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무 생각 없이 독일 계좌로 돈을 부쳐서 하려고 했는데, 돈을 보낸 순간 문득, 1년 전, 이 돈을 내가 한국 계좌에서 송금했던 게 떠올랐다. 미루고 싶었지만, 요즘 시스템이 얼마나 좋은지 해외 송금도 바로 이뤄져 버렸다. 다시 돈을 한국 계좌로 보낼까 싶다가도 이왕 된 거 독일 계좌에서 돈을 보내야겠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내 독일 계좌 일일 이체한도가 작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자력으로 되지 않는 듯하여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니,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고 상담원이 이야기한다. 그렇게, 컴퓨터로 로그인하려는데, 비밀번호가 3번 틀려 계좌가 잠겨버렸다. 해결하려면 지점을 방문하라고.


아. 갑자기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생각하니 이 멍청한 나 자신에 욕이 나온다.

“애초에 돈을 독일 계좌로 부치지 않았더라면.”

“온라인 뱅킹을 차분하게 했다면.” 등등등.


멍청한 자책을 하다가 혹시나 필요할 법한 모든 서류를 다 들고 지점을 방문한다. 지점에선 그냥 내 카드 하나만 달라더니 이 모든 과정을 쉽게 처리해주는데, 문제는 새로운 비밀번호를 다시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보통 하루에서 이틀 걸리는데 월요일이 공휴일이라, 그 전에 되길 희망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된 게 어디냐 하고, 그 주소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니, 주소 바꾸는 것도 했다. 언젠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이렇게라도 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무튼, 친절한 독일인 아저씨 덕에 큰불을 껐다 싶고, 이체 한도를 조정해달라고 하니, 애초에 내 이체 한도가 10,000유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또 멍청한 짓을 한 셈이다. 애초에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체 한도를 11,000유로로 조정하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카드도 막힌 거 아니냐고 하니, 카드랑 온라인 뱅킹과는 관련이 없다고 일러준다.


그러고는 은행을 나오는데, 한 시간 동안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들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순간 독일에서의 삶이 버겁다고 느꼈는데, 또 그냥 부딪쳐 보니 별거 아닌 것 같다가도 오전 시간을 이런 식으로 날려버린 멍청한 자신에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요즘은 기술이 워낙 좋다 보니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다 저장되어 있는지라, 비밀번호가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결국 화근이었다. 그리고 비밀번호 세 번 틀렸다고 잠겨버리는 것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럴 수 있겠거니 싶다. 결국 내 불찰이다.


최초에 돈을 독일 계좌가 아니라, 한국 계좌에서 부칠 수 있던 걸 생각했다면 다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바보 같은 수업료지만, 다시금 내가 외국인으로서 약자의 위치에 있단 걸 실감한다.



하지만..

사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주가 지났다.


독일의 은행 시스템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뭐 은행만 그럴쏘냐. 나머지 행정부분에 있어서도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긴 하다만.


하루 이틀만에 올 거라는 우편은 일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화가 나는 걸 꾹 참고 열흘이 지나 다시 방문한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내가 보기엔 네 온라인 뱅킹은 정상적으로 된다는데? 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한다. 그러고는 상담직원은 귀찮다는 듯이 대응했는데, 분명히 새로운 우편 열흘 지나도 안 왔고, 네가 보는 것처럼 로그인 안 되니까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니, ‘그럼 그 전에 보낸 게 지금 도착해도 그건 못 쓰는 거다?’ 하고 말하니 알았다고 그냥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도 이번에 진짜 오겠거니 하고 기다렸다.


사흘이 지났다. 매일 같이 우체통을 확인하지만 오지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아니 지점을 방문하면 거기서 신분 확인이 되는데 왜 또 우편으로 보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미치듯이 불편하고 멍청한 시스템이다. 이번에는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빌어먹을 우편은 오는 거냐, 온라인 뱅킹을 2주 동안 못 쓰고 있다. 등등. 직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정보보호법 때문에 전화, 이메일 상으로 알려줄 수 없고, 심지어 내 주소도 모른다고 한다. 직원이면 나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게 한국적인 사고방식일까. 무튼, 내 주소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러니 우편이 제대로 발송됐는지 알 리도 만무하다. 이렇게 시스템이 따로 노니까 우편이 다른 데로 새도 알 도리가 없는 거다. 30분 가까이 이러쿵저러쿵 하다가 결국은 불러주는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그 주소로 새로운 온라인 뱅킹 비밀번호를 보내준다고 했다. 이런 소모적인 행정 소요에 지칠대로 지친다. 이 나라가 과연 선진국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당장 이 때문에 밀린 행정업무를 다 못하게 생겼다. 그래서 화가 난다. 마냥 기다려도 해결이 안 되는 게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다음 날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내 세부 주소가 안 적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다시 보내준다고. 주소를 여러번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오겠지 하고.



그러고 거의 일주일. 인고의 시간을 거쳤다. 이번에도 오지 않는  같아 최후의 방법으로 직접 찾아가서 너희 지점에서 직접 받으라고 이야기하려고 했던 찰나, 3주만에 우편을 받았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랄까.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고이고이 저장했더니 묵은 숙제가  내려간 느낌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행정 업무를 처리하니 마음이 너무나도 가볍다. 이제야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됐다고나 할까.


이곳에 살면서 제일 커다란 여러 가지 일은 그동안 해결한 셈이지만, 아직 경험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닥쳐오지 않았단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당황하기보단 조금 차분히 해결해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결국 모든 건 돈을 조금 들이거나 혹은 그게 아니면 시간을 들이면 다 해결되는 문제니까. 미리미리 모든 일을 다 해결하려는 강박관념이 가끔은 나를 옥죄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게 도움이 될 때가 많으니, 그보다도 그 성격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는 없을 테니 이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다만 스트레스만 잘 조절될 수 있길 바랄 뿐.

매거진의 이전글 첫 학기, 첫 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