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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Oct 26. 2022

하인리히 법칙: 독일에서의 사건사고.

건강이 최고야.


누구나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하고 산다. 가끔은 그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꽤 큰 물적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주기도 하는데, 보통은 그보다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그치는 경우가 더 잦다. 그럴 때 반응들은 대개는.. 엄마야. 깜짝아. 휴, 다행이다. 아찔했네. 등등.


군에서는 이런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을 때마다 원래 있었던 일보다도 더욱 확대해석하여 대책 회의를 한다거나 심한 질책을 하기도 한다. (물론 사고가 발생하고 땜빵식의 사후처리, 징계 등의 책임 공방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고 예방대책이라는 명목으로. 그 논리로 제일 많이 언급되는 것이 하인리히 법칙, 1:29:300. 이는 하나의 큰 대형 사고는 29번의 중간 크기의 사건과 300개의 자그만 일들로 이뤄진다는 것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친한 지인이 엊그제 큰 사고를 당했다. 내리막길에서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고장나, 제동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진행 방향에 자동차가 나타났고, 이를 피하고자 방향을 꺾은 채로 당황한 나머지 벽으로 돌진했다. (어머나) 그곳에 있는 주변이 울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고 모두가 달려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주인공은 지금에서야 이야기하기를 내가 강한지 벽이 강한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는 후일담을 전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길을 지나가는 아저씨는 구급차를 불러주며 설명하기를 어디어디에서 자전거 사고가 났는데, 환자는 젊은 한국인이라고 설명했다. 도대체 한국인인 건 어떻게 알았을까? 사실 그것도 궁금했지만, 그걸 궁금해하기엔 사고의 크기가 너무나도 어마무시했다. 운전자는 내려 의식을 확인하고 필요한 게 있는지 계속 확인했는데, 굉장히 딱하게 쳐다보았다. 딱하긴 했다. 이 상황이. 운전자도 운전자인데 옆에 있는 아이들도 어떻게 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주변의 이웃은 아이스팩을 가져왔다. 그렇게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구급차가 왔고, 주인공은 병원으로 후송됐다.

대학병원. 조경이 훌륭한 편이다.


이후, 나는 응급실에 찾아갔다. 독일에서 응급실이라니. 말도 잘 안 통하거니와 시스템을 잘 모르는지라 잠자코 한 두시간은 기다렸을까. 알고 보니, 면회가 가능했다. 응급실에서 담당하는 치과(구강안면외과)로 가기 전까지 꼬박 두 시간은 더 기다렸는데, 역시 일 처리가 느리다고 생각해본다. 그래도 대학병원인지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그 순간, 미국이 아닌 게 어디인가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시간이 지나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며칠 전 똑같은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 그때도 제동이 잘되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진행 방향에 차가 없어서 위험하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그런 이유로 이 사고가 당시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다음 날이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을 일이었다고.


또 주인공은, 십 수년 동안 보험에 꼬박꼬박 낸 돈을 이렇게 뽕을 뽑는다부터 해서, 교정기를 껴서 이렇게 큰 충격에도 이는 하나도 나가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을 인용하고, 혼자 벽에 부딪혀서 다행이지, 차에 박았으면 큰일 날뻔했다, 이왕 부딪히는 거 다른 쪽으로 부딪혀서 얼굴을 예쁘게 수술하면 좋았을 걸 등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잃지 않는다. 이는 강한 멘탈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긍정적인 인간일까. 경이롭다. 어떤 동기이든 간에 모두가 본받을만한 마인드셋이다.


의사들은 환자의 사고 내역을 보더니, 이번에도 자전거라고 이야기했단다. 그러면서 이 병원에 실려 오는 환자의 40%가 자전거 사고 환자라고. Green City라고 자전거 많이 타고 다니는 게 이런 점에서는 안 좋은 건가 싶다. 그나저나, 그전까지만 해도 헬멧 쓰면 ‘너 세 살이니? 무슨 헬멧을 써, 쪽팔리게.’라고 헬멧 쓰는 이들을 조롱하던 주인공은 이번 계기로 뼈저리게 반성하고 헬멧을 쓰기로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앞으로 불편해도 헬멧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번 사고로 생각하기를, 구급차를 부르고 입원이 아무리 길어져도 돈 한푼 내지 않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계속 살기에 나쁘지 않다는 걸 생각해본다. 매달 120유로씩 내는 보험료가 너무나도 아까웠는데, 결국 돌아오긴 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돈은 그 어떤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받는 건 아니지만, 사회보장이 이렇게나 잘 되어 있는 나라라는 걸 실감한달까. 한국을 떠나기 전만 해도 독일을 동경했던 내 모습이, 이곳에 1년 넘게 살며 무참히 퇴색됐는데, 이번 계기로 다시금 조금은 회복되는 듯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도 정말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좋긴 하지만.


이 의료보장제도는 사실 1873년 비스마르크의 사회보장제도가 그 배경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생각하기를, 한국의 의료보장제도가 이곳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시작이 박정희 정권 때였으니, 유난히 파독 광부, 간호사는 물론이고 독일에서 유학한 지식인들이 그 당시 여러 곳에 분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최근에는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유시민도 독일에서 공부했으니 이곳의 의료정책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나의 생각이 맞는다면 비스마르크의 정책이 150년이 지나 지구 반대편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각설. 사고를 당한 날은 주인공의 생일이었다.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생년월일을 보고, 생일 축하한다고 전했다. 누군가는 위로라면 위로로 더 심하게 다칠 뻔했는데 다행이라고도 한다. 사실 이만하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

이렇게 좋게 마무리되면 좋았을걸. 수술을 하기로 한 당일, 간호사들이 단체 파업을 했다. 그런 이유로 수술은 다음 주로 미뤄졌다. 프랑스 국경이라고 하는 짓도 프랑스랑 비슷한 건지, 아니면 원래 이놈의 나라도 이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황당하다. 물론, 의사와 간호사 모두 노동자로서 파업에 대한 권리가 없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만, 환자의 당장,, 당일 수술을 취소할 정도로 모두 파업해버리는 건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며 쌍욕을 했다. 어디까지나 내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지만, 당사자가 되면 그럴 수가 없는 거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어찌됐든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참, 지겹도록 듣는 얘기지만, 지겹도록 듣는 이야기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사고는 정말 순식간이다. 그렇다고 사고 나기 싫어서 집에만 있는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것도 아니다. 삶은 살아가야 한다. 항상 조심해야 할 뿐. 또, 타지에서 아프면 겁나게 서럽다. 누가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또 천지 차이다. 사람들이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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