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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Oct 13. 2022

독일에서의 첫 번째 손님. 아버지.

감격스러운 부자 상봉


이곳에 온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날 찾아온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차례 몇몇 지인이 방문 의사를 보였지만, 끝내 이뤄지지는 않았다. 지난 1년간 산 곳이 워낙 시골이기도 했고, 독일이 유럽 내에서 이태리나 프랑스만큼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닌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이뤄지는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여하는 김에 나를 찾아오셨다. 처음만 해도 아버지가 공항에 도착해서 직접 기차를 타고 오시겠거니 생각을 하다가, 몇 주 전쯤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공항에 마중을 나가야겠다고. 그렇게 독일에 계신 아버지 친구분과 일정을 조절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감격스러운 부자 상봉의 시간..?

아버지에게 이상하게도 알코올 냄새가 많이 났는데, 긴 비행에 잠이 오지 않는지라 스카치를 몇 잔 하셨단다. 이를 닦았는데도 냄새나냐고 물어, 폴폴 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숙소로 이동하면서 지난 몇 년간 있었던 이야기를 친구분과 말씀하신다.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연구에 관한 내용. 예전에는 전혀 알아듣지 못할 내용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1년 공부를 한 게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분을 보내고 아버지와 한 잔을 더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가족 구성원 중 아무도 모르는 속이야기를 조금 듣는다.


다음날. 새벽 여섯시가 조금 지나자 배고프다고 밥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당황스러웠지만 따라나선다. 아침을 거하게 먹고 Freiburg로 이동한다.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2년 전에 내게 보냈던 파이썬 코딩을 띄워보라고 하신다. 나는 아버지에게 인터넷에서 긁어온 거 아니냐고 했는데, 본인이 교육용으로 직접 만드셨다고 한다. 순간, 나이 많아서 지금 코딩 배우는 게 힘들다고 생각한 내가 떠올랐다. 환갑인 나이에 파이썬으로 코딩하는 아버지도 있는데.. 아버지는 예전에 Fortran이라는 프로그램을 썼다고 한다. 옛날 사람이다.


도착하고, 사는 집부터 이곳저곳을 다녔다. 일전에 라이프치히를 갔을 때 나를 초대했던 교수님께선 이곳의 역사, 건물 하나하나에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해주셨는데, 난 어째 그런 연륜이 부족했는지 막상 설명할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손님을 대접하는 식당 리스트도 머릿속에 없었다. 학생들이 가는 가성비 좋은 식당을 갔다가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목격하니 씁쓸하다. 고작 하는 거라곤 곳곳에 있는 이 동네 맥주집을 낮부터 들렀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곳에서 짬밥을 1년 먹고 나름 독일어를 조금 하니, 심오한 역사까지는 아니어도 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기본적인 가이드는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랑 같이 다닐 만 하다고 이야기했다. 큰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서툰 첫 번째 손님 대접이 끝났다. 아버지가 첫 번째 손님이었던 게 아쉬울 뿐이다. 다음 손님은 더 능수능란하게 모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나 앞으로 오게 될 손님을 맞이하는 게 벅차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손님 대접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싶다. 그동안 도시 돌아다니며 손님 대접받은 게 감사하기도 하면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여러 에피소드 중 10년 전 이야기가 나왔다. 사관학교 입교식 때,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다림질을 샀어야 하는 이야기 등등. 그러곤 아버지를 보는데 올해 환갑을 맞이한 아버지의 주름살과 옅어진 머리숱 등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외국 출장을 그렇게 많이 다니셨다고 했는데 오늘 기차 탈 때는 많이 헤매셨다. 아버지 은퇴가 얼마 안 남았구나 싶다. 그래서 떠나는 길도 배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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