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묘생
친한 지인에게 고양이가 있다. 얼마 전까지 유학생의 신분이었는데 어떻게 고양이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다.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얻게 된 걸까 등등. 그 이야기를 살펴본다.
돈 없는 학생, 특히 유학생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월세를 내고 집주인과 사는 일들이 있다. 이 집주인이 어르신인 경우, 그 월세는 더욱 적을 수 있다. 지인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월 100유로만 내고 생활했다고.
100유로를 냈지만, 실은 그보다도 그곳에 바친 노동의 시간이 훨씬 많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집주인은 청각장애를 앓고 있어서 모든 행정업무를 본인이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공휴일, 휴가철에도 이 어르신의 가족들은 얹혀사는 유학생에게 맡겨놓고 다들 본인들 놀러 가기 바빴다고. 그 와중에, 어르신은 인생이 무료했는지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나선다. 하루는 노묘를 어디선가 데리고 와서는 한동안 있다가, 그 노묘가 떠나고는, 이 유학생에게 고양이를 데려올 것을 이야기한다. 유학생은 그 말처럼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오는데..
노인은 이야기한다. 이 고양이는 왜 이렇게 날뛰니. 고양이가 이렇게 차분하지 못하니. 등등의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노묘와 다르게 에너지가 넘치는 새끼 고양이를 노인은 감당할 수 없었다. 그건 고양이도 마찬가지. 청각장애를 가진 노인이 본인과 놀아주기는커녕, 윽박지르고, 제대로 된 케어를 해줄 리가 만무하니 이 고양이도 처음부터 주인인 노인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제대로 보살펴준 건 역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 고양이는 정원이 딸린 큰 집에서 노인의 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인공의 방과 정원에서만 지낸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직장을 잡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떠나는 시간도 매번 늦춰졌는데 그 이유는 정이 많이 들어버린 고양이. 대중교통이 열악했던 그곳에서 직장까지 왕복 세 시간 남짓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그런 인고의 시간 끝, 진짜로 다른 도시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을 때, 역시 제일 큰 고민이 되었던 건 고양이.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 고양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러니 모두들 그 고양이의 주인은 당연히 너지. 네가 데려가야지. 무슨 고민을 하냐. 이구동성 대답한다.
주인공 모르게 노인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친구가 이제는 정말로 떠나는데, 고양이를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무슨 걱정을 하냐. 당연히 그 친구가 데리고 가는 게 맞지 않냐. 그 고양이가 당신과 살면 불행하지 않겠느냐. 등등. 역시 이구동성 대답한다.
어찌됐든 그렇게 고양이는 이곳에 오게 되어 나를 만나게 되었다. 두 살 하고도 반년쯤 지난 친구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거늘, 그것도 내가 가진 편견이란 걸 알게 됐다. 이 친구에게 정이 많이 들었다.
주인공이 떠나는 날, 노인은 정말 많이 슬퍼하고 울었고, 새로 온 세입자에게 이전 같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었기에 매일 같이 그리워했다고. 측은지심이 들어 하루는 휴가를 맞아, 날을 잡고, 고양이와 함께 그 노인 집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가자마자 며칠 동안 온갖 일을 처리해주다 보니 다시는 질려서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다고. 노인에겐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편, 나는 그러면 그 집이라도 나중에 유산으로 물려받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본인도 조금은 기대했는데, 그런 건 일말의 여지도 없었다고.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은 영화에만 있는가 보다. 현실은 피가 물보다 진한 것이고, 사람들은 한없이 이기적일 뿐. 그 속에서 마음이 약한 사람이 매번 손해 보는 거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노인은 고양이에게 그 어떤 보살핌도 베풀지 않았지만, 떠나기 전까지 돈을 냈다고. 뭐, 그것도 인생의 큰 부분이기도 하지 않는가.
짧은 묘생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굉장히 흥미롭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