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독 바다청년 Oct 05. 2022

이방인으로서의 억울함?

악랄한 독일 행정



처음 왔을 때만 해도, 30년 가까운 평생의 삶을 살던 곳에서 아예 다른 세상으로 왔으니, 사소한 행정업무도 여러 번 확인하며,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살다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데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자신감에 차 한국에서 하듯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게 된다. 예를 들어, 차를 빌린다든지, 헬스장을 간다든지 등등.


먼저 헬스장부터 알아본다. 등록할 때부터 1년 멤버십인지라 조금 꺼려졌지만, 매달 20유로에 최신식 기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게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었기에 큰 고민하지 않고 등록했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이 지역을 떠나게 되리라 예상이 된 순간, 그곳 직원에게 몇 달 후에 떠날 건데, 그때 멤버십 해지할 수 있냐고 하니, 이사할 곳 근방 30km의 다른 지점이 없으면 바로 해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다니던 독일인도. 그렇게 이사할 시점이 다 되었다. 직원에게 이야기하니 본인 스스로 해지할 수 있다고 한다. 뭐가 의심쩍었지만 알았다고 하고, 집에서 해지하는데, 이상하게도 해지 시점이 석 달 뒤다. 이 상황을 독일인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이사할 집 계약서 들고 현장에 직원한테 이야기하면 바로 해지가 된단다. 부랴부랴 갔다. 그곳 직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며, 처리되었다고 이야기해준다.


다음 달이 되었다. 해지되었다는 헬스장에서 또 내 돈을 빼간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전화를 건다. 정상적으로 처리되었단다. 12월에 해지하는 걸로.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너 동료가 이렇게 처리했다고 했다고 하니, 본인은 모르겠단다. 그러면서 보스한테 말해보겠다고 한다. 며칠을 기다렸다. 아무 연락이 없다. 또 전화했다. 이번에는 그곳에 거주등록증 보내주면 해지 해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 말처럼 거주등록증을 보냈고, 이러이러했으니, 이번 달 것 까지 환불 요청을 했다. 며칠 지나고 이번에는 본사에서 연락이 온다.


‘너의 서류는 잘 받았고, 석 달 후에 멤버십 종료될 거야.’


이때부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여행 도중에 지점에 연락한다. 어떻게 된 거냐고. 본인들도 영문을 모르겠단다. 보스한테 연락하고 연락해준단다. 저번에도 이렇게 기다렸더니 아무 말 없었다. 당장 연락하라고 했지만, 금요일이라 없다고, 다음 주에 연락하라고 한다. 알았다고 했다.


마침내 그 다음주 월요일, 다시 전화했다. 처음부터 상황을 다시 설명하니 아 그랬냐며 본인이 본사에 연락해본다고 했다. 몇 시간 지나서 다시 전화하니,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되지 않는단다. 나는 너희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 해서 했는데, 3달 지나서 해지된다고 하면 너희 책임 아니냐고 하니, 미안하다고 하는데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본사에 항의메일 보내며, 너 이름을 적어서 너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고 해도 되겠냐고 하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한국식으로 너희 직원이 이렇게 설명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고, 내 친구들도 이런 식으로 해지한 걸로 알고 있다. 절차가 이렇게 안 맞아서 되겠느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면 온라인에 올릴 거라고 보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연락이 온다.


‘구두로 이야기한 건 효력이 없고, 계약서상 명시된 것처럼 3달이 지난 후에 종료된다. 그전까지 어떤 지점에서든지 운동할 수 있어.’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어쩌랴. 계약서를 그새 찾아봤지만, 빌어먹을 30km 관련된 규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나의 불찰이다. 이곳에 정신과 시간을 쏟은 게 아까울 뿐, 미리 찾아보지 않은 나의 부주의도 컸다. 그리고 알고 보니 독일인 친구도 똑같은 이유로 석 달 더 돈을 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서로 같이 욕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동일한 날에 할인 바우처를 보내준다. 서로 분기탱천하여 썩을 놈들이라고 욕을 했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었다. 그냥 불평불만일 뿐.



이번엔 렌트카.


이사 한다고 호기롭게 빌린 렌트카. 차 빌리는데 보증금을 달라고 할 때부터 미심쩍었지만, 반납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 다시 보증금을 받게 된 후로,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3주쯤 지났을까. 렌터카 업체에서 돈을 요구한다. 명목은 행정업무. 기한은 10월 2일까지. 뭔가 스피드 티켓 같았는데 명확한 이야기가 없어서, 근거를 보내달라고 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일주일도 넘어서, 10월 4일, 답장이 온다.


‘3km/h 과속을 했고, 이 스피드 티켓이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이런 행정 처리를 하는데 우리는 너에게 29유로를 청구한 것이고, 너는 이 스피드티켓을 따로 지불해야 된다.’


무슨 신박한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규정을 찾아보니 그런 규정이 있다. 행정업무로 돈을 청구할 수 있다고. 아. 당연히 그 정도는 너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냐. 이미 규정 있고 돈 뜯어 간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별수 없다. 돈을 내는 수밖에.


과속 딱지 파일을 열어본다. 9월 6일에 콘스탄츠에서 렌터카 회사로 보낸 것으로, 1주일 내로 돈 보내라고 했으니, 온라인으로 벌금 내는 시스템도 막혀 있다. 다시 메일을 보낸다.


‘이거 보면 알 수 있듯이, 나 오늘 메일 받아서, 지금 알았고, 돈 내려고 하니까 이 바코드가 만료되었어. 다시 보내줄 수 있겠니? 그리고 1주일 지난 기한도 내 잘못 아니니까 벌금 더 안 냈으면 좋겠어.’


답변이 왔다. 우편으로 보냈고, 그 계좌에 돈 부치면 된다고.


그렇게 파란만장한 행정업무가 끝나가는 것 같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부수적인 돈이 나간다. 한 푼이 아쉬운데 이렇게 벌금 내는 게 너무나도 뼈 아프다. 무엇보다 어처구니 없는 일로 돈이 나가는 것 같아서 더욱 화가 난다.


한국의 과속알림 시스템이 그리워질 줄이랴. 3km/h 과속했다고 바로 벌금을 맞을 줄이야. 오만 생각이 스쳐 간다. 이방인으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러고 보니, 작년 처음 도착하고 다음 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왼쪽으로 간다고 20유로 벌금을 받은 게 떠오른다. 참. 이제야 생각난다. 이곳의 행정 시스템이 얼마나 악랄한지. 돈도 못 버니, 좀 더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술의 매력 혹은 두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