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한 독일 행정
처음 왔을 때만 해도, 30년 가까운 평생의 삶을 살던 곳에서 아예 다른 세상으로 왔으니, 사소한 행정업무도 여러 번 확인하며,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살다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데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자신감에 차 한국에서 하듯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게 된다. 예를 들어, 차를 빌린다든지, 헬스장을 간다든지 등등.
먼저 헬스장부터 알아본다. 등록할 때부터 1년 멤버십인지라 조금 꺼려졌지만, 매달 20유로에 최신식 기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게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었기에 큰 고민하지 않고 등록했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이 지역을 떠나게 되리라 예상이 된 순간, 그곳 직원에게 몇 달 후에 떠날 건데, 그때 멤버십 해지할 수 있냐고 하니, 이사할 곳 근방 30km의 다른 지점이 없으면 바로 해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다니던 독일인도. 그렇게 이사할 시점이 다 되었다. 직원에게 이야기하니 본인 스스로 해지할 수 있다고 한다. 뭐가 의심쩍었지만 알았다고 하고, 집에서 해지하는데, 이상하게도 해지 시점이 석 달 뒤다. 이 상황을 독일인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이사할 집 계약서 들고 현장에 직원한테 이야기하면 바로 해지가 된단다. 부랴부랴 갔다. 그곳 직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며, 처리되었다고 이야기해준다.
다음 달이 되었다. 해지되었다는 헬스장에서 또 내 돈을 빼간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전화를 건다. 정상적으로 처리되었단다. 12월에 해지하는 걸로.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너 동료가 이렇게 처리했다고 했다고 하니, 본인은 모르겠단다. 그러면서 보스한테 말해보겠다고 한다. 며칠을 기다렸다. 아무 연락이 없다. 또 전화했다. 이번에는 그곳에 거주등록증 보내주면 해지 해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 말처럼 거주등록증을 보냈고, 이러이러했으니, 이번 달 것 까지 환불 요청을 했다. 며칠 지나고 이번에는 본사에서 연락이 온다.
‘너의 서류는 잘 받았고, 석 달 후에 멤버십 종료될 거야.’
이때부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여행 도중에 지점에 연락한다. 어떻게 된 거냐고. 본인들도 영문을 모르겠단다. 보스한테 연락하고 연락해준단다. 저번에도 이렇게 기다렸더니 아무 말 없었다. 당장 연락하라고 했지만, 금요일이라 없다고, 다음 주에 연락하라고 한다. 알았다고 했다.
마침내 그 다음주 월요일, 다시 전화했다. 처음부터 상황을 다시 설명하니 아 그랬냐며 본인이 본사에 연락해본다고 했다. 몇 시간 지나서 다시 전화하니,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되지 않는단다. 나는 너희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 해서 했는데, 3달 지나서 해지된다고 하면 너희 책임 아니냐고 하니, 미안하다고 하는데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본사에 항의메일 보내며, 너 이름을 적어서 너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고 해도 되겠냐고 하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한국식으로 너희 직원이 이렇게 설명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고, 내 친구들도 이런 식으로 해지한 걸로 알고 있다. 절차가 이렇게 안 맞아서 되겠느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면 온라인에 올릴 거라고 보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연락이 온다.
‘구두로 이야기한 건 효력이 없고, 계약서상 명시된 것처럼 3달이 지난 후에 종료된다. 그전까지 어떤 지점에서든지 운동할 수 있어.’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어쩌랴. 계약서를 그새 찾아봤지만, 빌어먹을 30km 관련된 규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나의 불찰이다. 이곳에 정신과 시간을 쏟은 게 아까울 뿐, 미리 찾아보지 않은 나의 부주의도 컸다. 그리고 알고 보니 독일인 친구도 똑같은 이유로 석 달 더 돈을 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서로 같이 욕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동일한 날에 할인 바우처를 보내준다. 서로 분기탱천하여 썩을 놈들이라고 욕을 했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었다. 그냥 불평불만일 뿐.
이번엔 렌트카.
이사 한다고 호기롭게 빌린 렌트카. 차 빌리는데 보증금을 달라고 할 때부터 미심쩍었지만, 반납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 다시 보증금을 받게 된 후로,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3주쯤 지났을까. 렌터카 업체에서 돈을 요구한다. 명목은 행정업무. 기한은 10월 2일까지. 뭔가 스피드 티켓 같았는데 명확한 이야기가 없어서, 근거를 보내달라고 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일주일도 넘어서, 10월 4일, 답장이 온다.
‘3km/h 과속을 했고, 이 스피드 티켓이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이런 행정 처리를 하는데 우리는 너에게 29유로를 청구한 것이고, 너는 이 스피드티켓을 따로 지불해야 된다.’
무슨 신박한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규정을 찾아보니 그런 규정이 있다. 행정업무로 돈을 청구할 수 있다고. 아. 당연히 그 정도는 너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냐. 이미 규정 있고 돈 뜯어 간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별수 없다. 돈을 내는 수밖에.
과속 딱지 파일을 열어본다. 9월 6일에 콘스탄츠에서 렌터카 회사로 보낸 것으로, 1주일 내로 돈 보내라고 했으니, 온라인으로 벌금 내는 시스템도 막혀 있다. 다시 메일을 보낸다.
‘이거 보면 알 수 있듯이, 나 오늘 메일 받아서, 지금 알았고, 돈 내려고 하니까 이 바코드가 만료되었어. 다시 보내줄 수 있겠니? 그리고 1주일 지난 기한도 내 잘못 아니니까 벌금 더 안 냈으면 좋겠어.’
답변이 왔다. 우편으로 보냈고, 그 계좌에 돈 부치면 된다고.
그렇게 파란만장한 행정업무가 끝나가는 것 같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부수적인 돈이 나간다. 한 푼이 아쉬운데 이렇게 벌금 내는 게 너무나도 뼈 아프다. 무엇보다 어처구니 없는 일로 돈이 나가는 것 같아서 더욱 화가 난다.
한국의 과속알림 시스템이 그리워질 줄이랴. 3km/h 과속했다고 바로 벌금을 맞을 줄이야. 오만 생각이 스쳐 간다. 이방인으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러고 보니, 작년 처음 도착하고 다음 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왼쪽으로 간다고 20유로 벌금을 받은 게 떠오른다. 참. 이제야 생각난다. 이곳의 행정 시스템이 얼마나 악랄한지. 돈도 못 버니, 좀 더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