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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Aug 14. 2022

술의 매력 혹은 두려움.

숙취 혹은 전날의 기억.


술 먹은 다음 날이 괴로운 건 숙취 때문일까. 전날의 기억 때문일까. 그나마 기억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기억하지 못한 순간의 나의 행동을 들을 때면 더욱 괴로울 뿐. 분명 내 자신이지만 정말 낯설게 느껴진다.


어젠 진탕 취했다. 그 전날도 다음날 아침 두통이 생길 만큼 취했는데 연달아 꽐라가 된 셈. 아침에 일어났는데 후회할만한 사건이 떠올라 이불킥을 하고 있었다. 모국어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상대가 없던 와중, 여기 사는 친한 친구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다 듣게 됐다. 듣다가 정말 내가 그랬다고? 후회할만한 사건보다도 더 미안할 만한 일들이 더 많았다. 숙취로 몇 시간 어영부영하던 게 무색하게 친구의 몇 마디로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숙취에 좋은 건 그 어떤 음식보다도 그런 몇 마디, 어떤 상황이 아닐까.


살면서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겪었을까. 그 실수로 나를 싫어하는 이들도 정말 많겠지. 그렇기에 서른 가까이 되는 이 시점에 그런 어린 행동들은 이제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늘, 아닌 걸로 판명났다. 정말 어리석다. 나이만 먹는다고 철들고,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지는 건 아닌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흔히들 말하기를,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 일단 이건 아닌 걸로 판명됐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면 바뀐다. 이건 해보지 않아서 경험담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는 어쩌면 그런 어린 행동들로 인해 잃을 것이 너무 많기에 바뀌는 건 아닐까.


너무 부끄럽다고 이야기하니 친구는 그 이야기를 덧붙였다. 진탕 취하고 다음날 후회하는 것마저도. 그게 술이 좋은 이유가 아니겠냐며.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다. 그냥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 그래도 술을 끊을 수 없는 건 그것보다도 더 많은 좋은 일이 있기 때문. 하지만 조심해야겠다. 내게 한편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 ‘술 먹으면 너 좀 정신 못 차린다’는 이야기를 네 살이나 어린 친구에게 듣는 게 쓰리다 못해 얼얼했다.


그나저나 어제부로, 이 작은 도시의 맥주 축제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잘 아는 옥토버페스트 다음으로 두 번째로 독일에서 큰 규모. 즉, 이런 생각을 하는 오늘마저도 술을 마시러 가야 한다는 사실. 부끄러운 기억이 없길 바랄 뿐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많은 사람들도 이런 일을 겪겠지. 하고 잠시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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