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독 바다청년 Aug 14. 2022

작별 인사. 떠나는 모습의 중요성

독일 맥주 축제에서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건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 해군에서는 우스갯소리로 1년 동안 개판 치다가 마지막 1주일만 잘해도 평타는 간다고 이야기한다. 반대로는 1년 동안 잘하다가 마지막 1주일을 개판 치면 그 사람의 이미지는 안 좋을 수밖에. 뭐 꼭 잘 보여야 한다기보다도 그만큼 마지막이 중요하다는 법이다.


그 조직에 너무 오래 있어서였을까. 이게 하나의 삶의 방식 정도가 아니라 체화되어 강박까지 생겼다. 그 말인즉슨 마지막을 너무 잘하려고 한다는 점?


이곳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했던 몇 가지 작별인사를 떠올려본다.


먼저, 추천서를 써줬던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을 뵐 일이 없을 것 같아 석사 합격을 받았고,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주신 프로그램 말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그럼 지금 떠나기 전에 고해성사하는 거냐.”며 괜찮다고 한다. 나는 교수님 수업이 앞으로 공부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될 거라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니 교수님은 “That’s my job.”이라며, 내게 축하한다고 행운을 빈다고 이야기해줬다. 마지막으로, 나는 수업은 너무 좋았는데, 시험을 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니, 걱정 말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괜히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틀 전엔 이곳에 있었던 축구클럽에도 작별 인사를 했다. 학기 시작 전만 해도 매주 2회 훈련을 빠짐없이 하곤 했는데, 학기 시작되고는 이 모든 게 너무 벅찼다.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모두 독일인인 그곳에 내가 녹아들지 못했다는 점. 워낙 빡세게 공차는 것도 한몫했다. 사실 꽤 오랜 기간 머물렀지만, 완전히 그들과의 벽을 허물진 못했다. 벽은커녕 제대로 된 이야기도 몇 번 한 적 없는 게 사실.


그랬지만 마찬가지로 좋은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게 체화가 되었으니 작별 인사는 잘해야지 않겠나. 우연히 며칠 전 술집에서 만난 축구클럽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다들 나를 좋아한다며, 그래서 떠날 때 맥주 한 박스 사서 가면 완벽할 거라고 조언을 해줬다. 그 조언대로 훈련 종료에 맞춰 맥주를 통째로 들고 갔다. 공짜 맥주를 줘서였을까. 마지막이니 그랬을까. 그동안 말 한마디 안 섞어본 친구들도 고맙다며 스몰톡을 했다. 나를 이해시키려고 천천히, 방언도 덜 섞어가며 이야기했던 모습들이 인상 깊었다.


이내 클럽의 회장 같은 사람이 공식적인 스피치를 했다. 시즌 초반 경기에서 모두 이겼고, 잘하고 있으니 이번 주도 이기고, 주말부터 시작되는 맥주 축제를 즐기자는 취지의 이야기. 그러고는 갑자기 나를 불러내어 한마디 하라고 한다. 다른 독일 아저씨는 영어로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나는 짧은 독일어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화답했다.


사실 스피치를 할 거라고 생각은 못 했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그동안 이곳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축구 단어들. 그중에서도 Andere Seite. 반대로 전환하라는 뜻이다. 매번 코치가 반대로 전환하라고 할 때마다 찬스가 나는데, 이것처럼 내 인생의 전환을 한다는 생각으로 그곳에 가게 됐고, 그게 내 인생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떠나는 건 정말 아쉽고, 독일에서의 첫 번째 커뮤니티가 이곳이었다고 환대해주어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뭐 스피치 이후, 모든 이가 박수 쳐주며 잘 가라고 했다. 코치는 나를 불러내어 완벽한 스피치였다고까지 했다. 감개무량했다. 주장은 나를 또 따로 불러내어 주말에 맥주 축제할 때 오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러고 두 세시간 지났을까. 피곤하기도 했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다른 코치가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한다. 코치가 물었다. 그동안 힘든 건 없었냐고. 지금 생각해보니 다른 힘든 기억도 많았는데, 축구 클럽 이야기를 했다. 혼자 외국인으로서 말도 잘 안 통하고 평생 이 시골에서 자란 로컬 멤버들과의 큰 벽이 있다고 느꼈다고. 또, 나는 가볍게 축구를 할 마음에 왔는데 꽤 많은 희생,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점에서 학기가 시작되고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고. 코치는 이야기했다. 다 알지만, 축구 클럽이기 때문에 사실은 그래야만 하는 거고, 너가 1년 가까이 있으면서 솔직히 완전히 녹아들지는 못했다고. 모두들 널 좋아하고 쿨하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순간 너는 이곳에 함께하지 않았다고. 틀린 말이 아니어서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다음 도시에선 축구클럽을 갈 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코치는 완전한 로컬 독일인과 이렇게 함께한다는 게 정말 특별하고 좋은 일이라며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이런 기회를 잘 삼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덧붙였다. 코치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또, 한국에선 이런 클럽에서 안 뛰어봤냐고. 너 잘 뛰고 충분히 잘한다고. 나는 이런 훈련이 다 처음이고, 한국은 이렇게까지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며 그래서 독일이 월드컵 우승도 하는 거 아니겠냐고 했는데, 코치는 ‘아니 한국 선수들도 지금 잘해서 유럽에 많지 않느냐.’고 했다. 뭐 손흥민, 몇몇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는 건 맞지만 다른 환경이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곤 했다.


마지막으로, 코치는 또 나보고 가죽바지 샀냐고 물어본다. 가죽바지 사고, 축제에서 독일 여성과 입맞춤을 하면 독일에 완전히 살고 싶어질 거라며. 뭐 그 이야기를 한 시간 가까이 들어서 세뇌가 되었을까. 그다음 날 결국 가죽바지를 큰마음 먹고 샀다.


마침내 시작된 맥주 축제. 어제는 대학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축구 클럽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결국 그쪽에서도 진탕 취해버렸다. 독일 맥주 축제의 노래 가사를 줄줄이 꾀고 같이 소리 지르니 옆에 있는 독일인이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이미 세 번째야. 다 마스터했지~’ 너스레를 떨어봤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금발에 파란 눈의 서구인이 한국말로 말 걸 때 우리가 드는 기분을 그는 느꼈던 거겠지.

아무튼, 완전히 그들과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지만 좋은 작별 인사를 했다. 사실 어쩌면 어제만큼은 그들과 아무 생각 없이 취하고 놀았으니 벽을 허물었는지도 모르겠다.


큰 짐을 덜어내는 것을 넘어 좋은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좋은 새 출발을 하고 싶다. 미련 남지 않게.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발걸음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