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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Aug 10. 2022

새로운 발걸음의 시작

인생사 새옹지마


벌써 1년이 지났다. 한 대학으로부터 석사과정 합격 발표를 받고, 3주 지나 학사학위를 인정하지 못한다고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것이. 1년만에 다시 같은 학교, 동일한 과정에 합격통보를 받았다. 이번엔 진짜배기로. 뭐 그렇게 따지면 작년에는 진짜가 아니었냐고? 그때는 진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깥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처절하게 느꼈던 순간이자, 9년간의 삶이 부정당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작년 10월, 나의 학사학위가 이 머나먼 땅에서 인정받게 된 이후에도 결과를 받기 전까지 안심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 학교에 다시 문제없냐고 물어보고, 확인받았는데도 불안했다. 친형의 조언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번에는 뼈저리게 새겨들어 실천으로 옮겼다. 어쩌면 해군의 DNA인지도 모르겠다. Plan A, B, C 뭐 최악의 상황으로 이곳에서 학사과정을 졸업한다는 시나리오도 가정했다.


결과론적으론 길고 길었지만, 다음 학기에 대학원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일 좋은 건 대학원 과정을 가게 되었다기보다도, 내 삶을 통틀어 처음으로 하고 싶은 뭔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때때로 시작하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이, 막상 하고 나면 적성에 맞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서른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또다른 인생의 변화를 갖기엔 위험부담이 큰 것이고, 진로 탐색은 그동안 충분히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가끔은 학사 과정이라고 꼽을 주는 몇몇 꼴불견 때문에 열받는 일도 있었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참고 견뎠는데, 이제 와서 대학원을 간다해도 아마도 나는 늙다리임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괜찮다. 그동안의 내 경험이 헛되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많은 분이 도와주었다. 정말로 감사하다. 또, 몇 시간 전에 합격했다고 이곳에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알리니 평일임에도 내 집으로 모여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곳에서 참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고국에서 바다를 지키는 동기들, 전우들에게도 항상 감사하다. 뭐가 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아야겠다.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태양광이 유명한지라, 비슷한 거를 하게 될 거다. 지속가능성, 환경보호에 이바지 혹은 조금 과하게는 지구를 살린다는 목표로, 그정도 능력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를 배우지 않겠는가. 입학 과정에서, 거창하게 자소설은 썼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겁난다. 그곳에서 국가대표 정우영 선수가 준주전으로 뛰고 있다. 아마 자주 가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여러모로 설레고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소망해본다.







.…..


이렇게 글을 쓰고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최초에 붙었던 과정이 아니라  공학적인 쪽으로 진학하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운이 좋게도 지원한 전공에 모두 합격했다. 지원하기 전에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같고 뭐라도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붙고 나니  걱정도 적지만은 않다. 여러 선택지 중에 어떤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일지, 이제부터 남은 시간 동안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등등. 생각보다 모르는   많고,   정말 많다는 생각에 좌절하면서도 이제는 무엇을 모르는지 정도는 알고 있고, 이걸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방향성이 훨씬 구체화했다는 점에 발전했다고 느꼈다. 인생의 자잘한 고민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아버지는 앞으로 세상에 어떤   필요한 공부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할  있는지를 고려해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친형은 얼마 전, 대학원 과정에 합격하면 그때엔 나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다시 하니, 본인이 그랬었냐며 술 취해서 기억 안 난다며, 그래서 이젠 네가 더 잘 나간다고 생각하냐는데, 나는 어렸을 때는 경쟁심이 있었고, 군바리라고 놀릴 때보단 낫다고 했다. 형은 집안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밖에서는 동생 자랑하고 다닌다고 했는데, 나도 며칠 전에 형 자랑을 조금 했다고 했다. 형제가 이런 건가보다 싶다.


그러더니 형은 코난 오브라이언의 대학졸업 연설을 들어봤냐고 한다. 설명하기를, 졸업할 때 지금 본인이 그리는 미래와 10년 후에 하는 일은 다를 것이라며, 진로는 항상 변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삶의 궤적이 바뀔 수 있고, 최선의 결정을 못 내릴 수도 있으며, 그에 따른 후회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나의 중요한 변화의 시점에서 선택했던 게 최선은 아니었음에도 그 길을 갔고, 또다른 변화를 맞아 이곳까지 올 수 있었으니. 어쩌면 이번 나의 선택도 지금 내가 그리는 미래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미 크게 인생을 틀었으니 다시는 인생을 틀고 싶지 않고, ‘완벽’한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에 하는 나의 고민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어진 좋은 기회 앞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없는 걸 인정하고 선택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10년 후에도 내가 원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한 것이니. 그럼에도 지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고르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결론은 다음 달부터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됐다.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을 마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날이 갈수록 설렘이 더욱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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