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의 목표, 그리고 원전
탄소 중립, 에너지 전환의 핵심이라면 모든 에너지 분야의 최종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고, 이 전기를 탄소 배출이 안 되는 재생에너지로 발전하는 것이 큰 골자다. 이를 위해선 운송 분야에서 전기차로의 전환, 그리고 열 분야에서는 보일러가 아닌 Heat Pump의 도입이 있겠다. Heat Pump의 공급원은 공기 혹은 지하수 등이 되는데, 작동유체(냉매)가 공급원의 열을 공급받고, 압축기가 작동유체를 압축, 가열해 열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압축기가 전기로 작동하니, 결국 쉽게 말해 전기로 열을 발생하는 방식이다. 이 열은 온수와 난방에 이용된다.
위 두 가지의 전환을 통해 모든 에너지가 전기로 사용된다고 했을 때, 그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주로, 태양광, 풍력. 변동적인 에너지 공급을 고려해, 저장장치를 통해 전기를 공급하는 것인데, 여기서 첨예한 논쟁이 발생한다. 이는 바로 원전.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보느냐 마느냐, 이에 대한 논쟁은 우리뿐만 아니라 이곳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각 정부의 입장만 보지 않더라도 프랑스에서 온 학생들만 봐도, 그들 대부분은 원전을 찬성한다, 전기 수요를 모두 충당할 건 원전밖에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 그러나 프랑스 원전의 실상을 들여보면, 원전의 절반 이상의 수명이 40년 이상이 되어 지속적인 오작동으로 인한 많은 발전소가 점검 중에 있고, 이에 따른 전기 수급이 굉장히 불안정하다.
어제는 대학에서 보내주는 현장체험학습으로, 스위스의 한국전력, Swissgrid에 갔는데, 이곳에서 프랑스의 전력 문제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면 시스템을 유지하는 주파수(유럽: 50Hz, 한국: 60Hz)가 변동되는데, 프랑스의 주파수가 계속해서 변동되고 있는 것. 프랑스와 전력 공급망이 연결되어 있는 스위스에선 프랑스로 전력을 수출하고 있었다. 그곳 직원은 본인들은 현재 공급하는 전력의 백업으로 400MHz 수력발전을 항상 준비해두고 있는데, 본인들보다 몇 배나 큰 프랑스에선 40MHz 정도의 백업 발전밖에 없다고. 유럽 전력망, European Grid가 전력 공급망의 안정성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다. 프랑스의 전력망이 망가지는 순간 모든 유럽이 영향을 받으니까.
또다른 문제를 들여본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가스 가격은 폭등하게 되었는데, 러시아 가스의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이에 대한 직격탄을 맞았다. 일단 급한 대로 당장 써야 하는 전기를 가스 발전이 아닌, 석탄 발전으로 대체한다거나, 올해 부로 원전을 중단하기로 계획했던 것을 몇 달 동안 연장하기로 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장기적인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더욱 늘리기로 했는데, 후자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위 일련의 사건으로, 독일 내 전기료는 폭등했다. 기존의 전기료보다 100% 넘게 인상했는데, 한 달에 전기료만 십~수십만원까지 내는 게 보통이다. 실제로 전기 도매 가격을 보니 MWh당 500유로까지 육박하는데 1년 반전만해도 수십유로에서 최대 100유로를 넘지 않는 게 이 정도 가격이 되었으니 폭등도 이런 폭등이 없다. 소비자들이 부과하는 전기료의 45%가 이 도매 전기료, 나머지는 전력망 이용금, 세금으로 구성이 되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독일은 재생에너지법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 설치를 위해서도 일정 부분 지불했는데, 이건 이제 법이 바뀌어 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전기료가 두 배 이상 인상됐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그럼 이 전기료는 어떤 방식으로 책정되는가. 먼저 Merit Order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쉽게 따지면 각 발전에 따라 단위 발전량이 얼마냐고 했을 때, 이를 가격을 책정해 제일 싸게 생산하는 에너지부터 팔리는 방식이다. 여기서 설비 당시 투자금액은 제외하고 발전량만 고려한다. 제일 싼 게 재생에너지, 그다음이 원전, 이후가 석탄 발전 순인데, 가격 책정은 제일 비싼 에너지의 가격 그대로, 가격이 책정된다. 예를 들어, 원전 단가가 MWh 당 15유로, 석탄 발전이 70유로라고 했을 때, 에너지 수요가 재생에너지, 원전을 넘어, 석탄 발전까지 필요하다면, 모든 에너지가 70유로에 책정되는 셈. 그전까지만 해도 가스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석탄 발전을 돌리게 되니 이 단가가 모두 올라갔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건 화석연료에는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래서 가격이 더 비싸기도 하다. 여기서 전력거래량에 따라 발전소, 전력공급소 모두 이윤을 챙겨가는 방식이다.
독일만 이런 게 아니라 전력망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유럽 전체가 거의 같은 가격으로 책정된다. 만약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공급이 더욱 많아져 모든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면, 이 발전 단가는 현저하게 낮아질 수 있다. 그게 궁극적인 목표겠지만, 쉽지 않다. 항상 태양이 내리쬐는 것도,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니까.
어제 방문한 원전에서는 매일 한화로 15억 넘는 돈을 번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그러니 여기서 일하면 급여가 짭짤하다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직원이 500명 정도라고 했는데, 대충 계산만 해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치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배경 아래, 나는 스위스전력의 탄소 중립 관련된 에너지 공급원에 대한 의견이 궁금했다. 답변은 실로 놀라웠다. 본인들은 어떤 형태로서의 발전은 중요하지 않고, 전기를 사람들이 많이 사용할수록 이에 대한 전력사용료를 내니까,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면 된다는 게 골자였다. 본인들은 발전과는 무관하고, 전력망 유지만 한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탄소 중립, 에너지전환 등이 그들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처럼 느껴져서 당황했다.
스위스는 뭐 이미 60%의 발전량이 수력발전이고, 33%의 발전량이 원자력인지라,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 이윤으로 빌딩 지었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탈탄소를 위해 단순히 자국의 전기 생산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에 투자했다고 하는 건 자본의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일까. 여러모로 씁쓸하다.
나는 하다못해, 에너지전환에 있어 느린 행보를 보여온 우리나라의 한국전력보다도 환경적인 관점이 없다고 느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한국전력은 적어도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을 그들의 장기적인 목표로 삼고 있지 않은가. 결국 모든 게 자본주의 논리에 놀아난다는 생각에 기후위기 관련된 목표가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대학에서는 가르친다. 어떤 특정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산업에서는 그것과 무관하게 이윤을 추구하고, 직원들은 이를 통해 성과급을 노린다. 씁쓸하다. 이윤을 넘어선 비전을 현실로 옮기는 것은 정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이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탄소세를 더 강하게 부과할수록,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날 테지만, 이 또한, 화석연료 산업의 로비 등에 의해 철저히 줄어들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스위스의 원자력 발전소는 이미 핵폐기물에 대한 향후 수십년간의 저장소가 이미 있다는 점. 영구 핵폐기물 저장소는 지하로 고려하고 있는데, 독일과 국경지대인지라, 독일의 반대가 심각하다고 한다. 우리는 핵폐기물을 원전 시설 내부에 관리해 이도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고, 아직 영구적인 저장소에 대한 논의는 먼 산인데, 이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나저나 어마어마한 원전의 Cooling Tower (냉각탑)을 보며 이러니 1GW 규모구나 싶다. 규모에 압도되면서도 결국은 핵폐기물에 대한 완전한 대안이 있는가 계속 곱씹게 된다. 화석연료 발전을 대체할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어려움을 생각하면서도, 그 핵폐기물의 처리와 언제든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 첨예한 에너지에 대해.
여러모로 많은 한계를 느낀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밝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