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는 역대 최고가 될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유럽 축구를 보는 건 기본이요, 월드컵, 유로 대회 때마다 경기를 챙겨보고,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도 축구, 하는 오락마저도 축구였으니. 그런 열정이 학창 시절을 마무리할 무렵부터는 서서히 줄었다. 사관학교라는 그 큰 물리적인 제한요소가 있기도 했는데, 그보다는 그 이후, 배를 타는 게 결정적이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바빠서 안 보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관심이 줄어드는 게,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월드컵의 역사에 관한 책을 봤던 걸 떠올려본다. 그 책에는 매 월드컵 우승팀은 물론이요, 그 당시 최고의 선수, 전설적인 경기가 서술되어 있었다. 기억나는 이름이라면, 펠레, 크루이프,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플라티니, 마라도나, 로시, 바조 등등. 세상이 좋아져서 이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축구 커뮤니티, 여러 동영상의 댓글 등을 보면, 언급한 역사 속에 위대한 선수들과 그리고 내가 축구를 처음 제대로 보기 시작한 2002년 이후의 선수들에 대한 비교가 항상 이뤄진다. 펠레, 마라도나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것부터, 지단, 사비-이니에스타, 모드리치 누가 최고의 미드필더냐 등등.
뭐 그건 그렇고, 며칠 전 이탈리아 친구와 넷플릭스에서 펠레의 다큐멘터리부터 바조의 영화까지 봤다. 축구가 삶의 전부인 사람들이 그 영상 속에 나온다. 전설적인 이름들도 있다. 영화 바조에는 94년 월드컵에 뛰던 선수 중 이천수가 2002년에 머리를 찬 말디니도 나온다. 말디니가 그 때도 있었다니.
또 바조가 2002년 월드컵에 나올 뻔했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된다. 그나저나 세상이 좋아져서 그 정도로까지 축구가 삶의 전부인 경우는 적은 듯하다. 그래서 그들이 마치 전설 속의 영웅이 된 건 아닐까.
한편, 펠레가 월드컵을 세 번 우승할 때도, 마라도나가 소위 하드캐리로 월드컵 우승과 준우승을 할 때 보면, 받쳐주는 선수들이 있을 때도 있지만, 분명 개인의 영웅적인 활약이 돋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월드컵 우승까지 이뤄냈으니 역대 최고의 반열에 오른 거일 테다. 무관이었던 크루이프, 플라티니보다는, 펠레, 마라도나가 그리고 베켄바워 등이 기억에 남지 않는가. 뭐, 크루이프랑 플라티니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우승이 없어도 그만큼 영웅적인 선수였으니.
각설. 다시 현대로 돌아와 본다. 21세기 이후 치러진 월드컵에서 개인적인 활약상이 제일 뛰어났던 건 브라질의 호나우두와 지단. 그 말고는 그 정도의 영웅적인, 독보적인 활약을 하여 우승까지 이뤄낸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다. 2010년의 스페인, 2014년의 독일, 2018년 프랑스는 팀 전체가 사기적이지 않았나. 물론 그 팀들에도 기억에 남는 선수들은 있지만.
이렇게 조직력이 중시되고 수비적인 전술이 더욱 발전된 현대 축구에서 지금까지도 영웅적인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가 있다. 이는 메시와 호날두. 이미 2000년 중반부터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계 축구를 양분한 인물이다. 이제 삼십대 중반,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 그들도 사람인지 예전만 하지 못하다. 특히 호날두는 이번 월드컵 때 우리나라의 주장처럼 경기를 하기도 했으니, 세월이 무색하다.
한편, 메시는 어제까지 준결승전만 해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예전만큼 폭발적인 스피드는 없지만, 번뜩이는 패스와 수비를 벗겨내는 드리블은 여전했다. 마지막 골의 도움은 아직도 그는 정상의 위치에 있음을 느끼기 했다. 마치 지단의 2006년 월드컵처럼.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한동안 메시는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비교적 조기 탈락했고, 월드컵에서도 신통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에 많이 ‘까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우승도 벌써 7년이 됐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그가 든 우승컵만 해도 몇 개이며, 그가 만든 공격포인트는 역대 최고가 아니던가. 그가 부족한 건 단 한 가지, 월드컵 우승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14년의 아쉬웠던 결승전을 뒤로하고 그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큰 경기,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그가 언급됐던 역사 속의 영웅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이는 마지막 경기에 달린 듯하다. 아쉽게도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렇게 최고의 선수도 월드컵 우승은 하기 어렵더라.’ 하며 아쉽다고 하겠지. 내 나라 선수도 아닌데 이 정도까지 애정이 느껴지는 건 그만큼 그가 위대한 선수였단 걸 보여주는 듯하다. 그 정도면 월드컵 우승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프랑스가 아르헨티나보다 전력은 강해 보인다. 뭐 프랑스가 꼭 올라오라는 법은 없지만 결승전은 아마도 그렇게 될 듯하다. 원래 단기전, 토너먼트는 수비가 강한 팀이 우승하는 게 정설인데, 아르헨티나 수비는 강한 듯하다. 오히려 그들답지 않게 투박한 플레이가 더 눈에 띌 정도. 2014년에도 그런 식으로 결승까지 갔으니, 어쩌면 그게 팀컬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사우디한테 질 때만 해도 그들이 결승에 올라갈지 누가 알았으랴.
시작부터 노동자의 인권 문제부터 여러 우승후보가 웃음후보가 되어 퇴장하는, 이야기가 꽤 많이 남는 월드컵이었다. 사그라지던 축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피어오르는 것이 월드컵 때문인 것 같으면서도, 그 전보다 편해진 내 인생의 변화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 젊은 세대에게 축구를 이야기할 때, 이런 전설적인 선수가 ‘하드캐리’해서 우승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