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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Feb 17. 2023

기념일 추억하기


살면서 기억에 남는 날짜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결혼기념일, 취직 날짜 등이 될 수도 있겠다. 내겐 오늘이 그런 날이다. 11년 전, 사관생도가 되었다. 매년 돌아온 날이기도 하지만, 11년 전과 똑같은 요일이기에 기억에 남는다. 아마 11년 동안 오늘 말고는 단 한 번만 2월 17일이 금요일이었을 테다.


11년 전으로 돌아가본다.

1월 13일에 훈련을 시작하고는 5주동안 훈련을 받았다. 어찌나 힘들었는지 3일만에 수양록에 나가고 싶다고 적었다. 훈련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가고 싶어도 5주 훈련은 버티고 나와라. 그 정도의 의지는 있어야 재수를 하지 않겠냐.’




그래서 죽었다 생각하고 5주를 보냈다. 마지막 사나흘은 입교식 준비로 시간을 보냈으니 정식적인 훈련 기간은 30일 남짓이었다. 수양록엔 날짜를 그려놓고 매일 밤 지난 날짜를 가위표를 했었다. 물론 모두에게 있는 훈련소의 경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훈련소 경험, 군대는 2년, 최근에는 1년 반에 그치지만, 내게는 9년간의 세월이었으니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해본다.


2월 17일, 사관생도가 되어 학교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군인으로 평생 살 다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정신교육을 했어도 내게 어쩌면 그와 같은 ‘군인정신’은 생겨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밌는 건 그랬으면 훨씬 그 전에 군복을 벗으면 될 일을, 그때부터 9년 뒤를 생각했다. 수능을 다시 보는 것도 싫긴 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참 미련하다.


하나의 일화가 떠오른다. 2018년 신년을 앞두고 근무하던 함정에서는 새해 다짐 및 꿈을 적고 공유했다. 나는 당시 꿈에 ‘더 나은 사람 되기’라고 적었었다. 그걸 듣고는 당시 함장은 날 나무랐다.


‘사관학교 졸업해서 군인이 되기를 바랐으면 참모총장이라든가, 못 해도 구축함 함장은 적어야 되지 않냐.’


그래서 나는 꿈은 계급이나 직책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었다.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이걸로 한 소리를 들은 게 분해서였는지 식빵을 많이 구웠다. 꼰대, ‘저러니까 군대가 요 모양이지’ 등등.


재밌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함장님은 사실 좋은 사람, 우리 표현으로 하면 ‘양반’이었다. 그다음 함장을 만나고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많이들 하지 않는가.






각설.

9년간의 본래 뜻과는 다른 삶을 살다가 이윽고 군복을 벗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경험이 다 도움이 되었다곤 하지만 단언컨대 쉽지 않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오해는 말라. 군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나랑 안 맞았을 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얼 하겠냐고. 주식 아니면 비트코인을 사서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바꾸고 싶은 과거가 없다. 군도 군이지만 어쩌면 지금 내 상황이 그 어떤 때보다도 좋기 때문은 아닐까.


때때로 삶이 권태롭고 지겨울 때도 있다. 언제까지 시험을 봐야 하는지, 매일같이 가는 도서관이 지겹기도 하고, 쪼달리는 삶에 가끔은 삶이 쉽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돌아보면 참 재밌고 뜻깊은 순간이 많다. 생각나는 고마운 얼굴들도 많고.




11년이 지났다.

많은 나의 동기들은 군에 남아 근무하고 있고, 절반 이상은 결혼하여 부모가 되었다. 참 멋진 일이다. 그중 누군가는 군문(軍門)을 벗어나 변호사, 의사가 되었고, 일반 기업에 다니기도 한다. 30일 넘게 나를 훈련시킨 호랑이 선배님은 교수사관이 되어 박사과정 중에 있다. 11년 전엔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의 내 모습도.


나의 오늘을 본다.

다소 게으르게 시작했고 이곳 날씨는 역시 우중충하고, 해야 할 공부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삶이 퍽 만족스럽다.


그 만족스러움은 무어가 됐든 살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 하고 싶은 일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전의 삶보다는 내게는 유토피아에 더 가까운 듯하다. 세상에 어디에도 유토피아가 없다는 사실은 꽤 오래전에 깨달았으니까.


11년 전, 어린 마음에는 군대만 나가면 세상이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졸업할 땔 즈음부터 깨달았고, 그 현실을 알게 된 많은 동기는 그 자리에 남기로 했으니까.


다음 11년 후, 2월 17일 금요일에도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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