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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Feb 15. 2023

독일에서의 인터뷰, 두 번째편.

익숙한 기다림, 시련에 절망보다는 희망을.


기다림은 이곳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다. 그 기다림 끝에 보상이 오기도 하지만, 막막한 기다림 끝에 좋지 않은 결과가 있기도 하다.


면접을 마치고 난 이 먼 타지에서 꿈꾸던 직장 자리를 가진 줄 알았다. 면접관은 관련된 서류 메일을 그다음 날 보내주기로 했는데, 그 메일은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다가 일주일쯤 지나서 왔다.


“네게 일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번 주 중으로 알려주겠다.”



잘못 봤다고 생각하고 유심히 계속 봤는데,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다. 메일을 보고 얼이 빠져서 한참 생각했다. 그때 그 사람의 말을 내가 잘못 이해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곱씹었다.


분노는 점차 현실 인식, 이윽고 우울감으로 바뀌었다. 왜 또 내게 이런 시련이 있는 건가 하면서.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분명 나 말고 다른 이와 면접을 꽤 많이 하고 그중에 나은 사람을 뽑으려나 보다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배신감도 느꼈다. 많이 배우고 열심히 하려던 마음은 되더라도 다른 기회가 있으면 도망가야겠단 생각을 들게 했다.


많은 생각이 오간다. 애초에 그렇게 내게 확신을 주지 않아도 됐는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보다 더 괜찮은 이가 나타나서 마음이 바뀐 걸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물다가 이에 대한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하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내가 예전에 썼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보냈던 메일을 다시금 봤다. 그걸 보니 그때 일이 또 떠오르고 기분이 더 별로다. 어찌됐든 구구절절이 적었다.

 

“저번 주에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 인터뷰는 아주 인상적이었고, 당신의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감명받았다. 당신 팀에서 단순히 조교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일하고 배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마 내가 당신이 찾는 완벽한 후보는 아닐지라도, 여러 프로젝트에 공헌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좋은 답변 기대한다. 등등”


기분은 나빴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을의 자세로 글을 썼다. 어찌됐든 구두로 말한 거니까 어떤 구속력도 없는 것이고,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니 나로선 그 어떤 것도 보장된 바가 없었는데, 그냥 나만 김칫국을 들이마신 셈이 된 거다.


그 일을 하게 되면 더 좋을 뻔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내가 그동안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만약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또 다른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중요한 건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아직은 시련과 어려움이 조금은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를 동기부여로 더 채찍질하기로 했다.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면서.




에필로그.


이 기다림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자리를 준다는 메일이 왔고, 계약서도 왔다. 그래도 한 번 뒤통수를 맞았으니 출근하는 날 전까지 동네방네 잘됐다고 이야기하는 건 꺼려졌다. 이 나라에서 경험한 게 워낙 쓰리고 쓰린 편이라.. 뭐가 됐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올바른 길로 간다고 확신하는 바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 좋은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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