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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Feb 15. 2023

독일에서의 첫 인터뷰 후기

몇몇 학과 내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 왈, 인터뷰 별로 걱정할 것 없고, 그냥 내가 어떤 것에 관심 있고, 내 배경에 관해 물을 거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들었지만, 해보질 않았는데 안심할 수가 있으랴.


그래서 인터뷰 일정이 잡히고 먼저 내가 보낸 서류부터 다시 검토하고, 나올 수 있는 질문을 추려봤다. 그리고 예전에 대학 지원하면서 준비했던 인터뷰도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다음은 웹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를 봤다. 나에게만 오퍼가 온 게 아니라 이미 공고가 올라왔으니, 이미 경쟁자는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요구사항을 꼼꼼히 살펴봤다.


내가 할 일과 내가 갖춰야 할 자격요건을 웹사이트에 나온 공고를 통해 찾아봤다. 자격요건에는 최적화, 머신러닝, 다른 프로그래밍 라이브러리 중 본인이 할 수 있는 것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고, 이러이러한 일을 할 거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수업 들었던 자료부터 내가 모르는 자료까지 보고, 정리했다.


다음은 면접관에 대한 정보 수집을 했다. 운이 좋게도 웹사이트에 공개된 논문이 있어서 어떤 연구를 했는지 볼 수 있었다. 만약에 여기서 일을 따내면 이런 일을 하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재밌는 건, Fraunhofer ISE 웹사이트 내 빌딩 분야를 찾아보니 그들이 서울시와 협력해 만든 Net-Zero Plus 빌딩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건 상암 월드컵경기장 옆에 있었다. 한국도 뭘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있는지도 몰랐으니 정책으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는 걸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대목이었다.



각설.


이외에도 몇 가지 웹사이트에 있었던 프로젝트 사례를 공부했다. 그런데도 막상 예전처럼 대본을 쓰지 않고 정리만 한 채로 말았으니 나태해졌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대본대로 이야기한 인터뷰가 꼭 좋지만은 않았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인터뷰 당일. 수업을 듣는데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실 저번 주, 면접관이 제시한 시간이 다 애매해서 시간을 조금 바꿔 달라고 했는데, 철저한 을이 그런 요구를 하는 게 당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튼, 그렇게 수업이 끝나자마자 빈 격실에 혼자 가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면접관은 간단한 인사를 마치더니, 본인 소개부터 본인 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했다. 본인은 원래 수학전공이었고, 컴퓨터 공학 쪽에 있다가 Fraunhofer 연구소에 오게 되었다고. 그래서 최적화, 머신러닝, 이런저런 코딩을 한다고 했다. 현재 본인이 하는 연구는 건물의 냉난방에 있어서 최적화, Heat Pump, PVT 등 시스템 모델링 등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 말고도 한두 명을 더 뽑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이미 내게 자리를 주겠다는 얘기가 아니겠나 싶었다. 그래도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이외에도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할 말을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에 제일 남는 이야기는 이상적인 건 석사 논문까지 본인 아래에서 쓰면 너무 좋고, 기꺼이 논문 지도를 하고 싶은데 워낙 흥미로운 주제가 많으니 다른 데 가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이며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어서 시작도 안 해서 섣부를 수도 있지만, 3학기쯤 하는 석사 프로젝트를 이 주제로 하고 싶고, 이어서 논문도 쓸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 이후에 커리어까지도.


이후엔 먼저 나의 배경부터 왜 독일을 왔는지, TUM에서 1년동안 있으면서 기본적인 공부를 하고, 이 방향을 하고 싶어서 왔고,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도 큰 목표라고 했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적지 않은 수업을 들으면서 이론적인 배경은 알고 있지만, 코딩 경험은 거의 없으며, 당신이 바라는 만큼 코딩 전문가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무엇보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빌딩 및 Heat Sector에서 에너지전환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고, 그것에 공헌하고 싶다고 덧붙이며.


Python을 얼마정도 했냐고 해서 6개월 정도라고 했다. 사실은 더 오래됐는데, 잘한다고 해봐야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라이브러리는 뭘 써봤냐고 해서 최적화할 때 Pyomo 써봤고, 면접관이 올린 웹사이트에 올린 공고에 있는 Pytorch, Tenserflow 등을 찾아봤고,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면접관은 그건 또 다른 사람 뽑는거라고 하는데, 그때 나는 이미 이게 처음부터 내게 주어진 거라고 다시금 알게 됐다.


면접관은 본인이 다음 학기에 수업해야 한다며 그걸 보조하는 역할도 해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물론이라고 하며 그 분야에 대해 적은 논문을 며칠 전에 봤다며 간단한 질문도 했다.


마지막으로, 언제부터 일하고 싶냐고 해서, 당장 다음 주부터도 가능하냐고 물으니, 서류 처리하는데 오래 걸려서 빨라도 3월 초, 3월 중순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월 60시간이 이상적인데 얼마 정도 일하고 싶냐고 하여, 일단 40시간 일해보고 괜찮으면 늘리고 싶다고 했다. 1주일에 10시간도 말이 10시간이지 그보다 더 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면접관은 좋다며 6개월짜리 단기 계약을 하고, 그 이후에 계약을 더 늘리는 걸 고려하자고 했다.




뭐 그렇게 면접은 잘 끝났다. 면접관이 아마도 교수급의 박사이고, 이외에 석박사생들이 꽤 있는 듯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리 하는 학생들이 도와줄 거라고 이야기했다.


모르긴 몰라도 빌딩 섹터에서 에너지전환은 중요한 일이고, 그것에 모델링, 최적화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아니었는가. 지금 이 팀은 냉난방이 주된 연구 방향이지만, 이외에도 전기차, Heat Pump의 전기 수요, 이를 감당할 PV 모듈에 대한 적용을 모델링할 수 있을 테다. 이미 많이 이뤄졌겠지만, 그쪽에 있다 보면 그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또 외부에 있는 이들이 들어오는 건 너무 어려운데 내겐 사실 이미 이 자리가 주어졌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정말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수업을 맡았던 박사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주어지지도 않았을 기회이지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자리를 얻었다. 그래서 감사하다.


그렇게 아직 시작은 안 했지만,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차근차근 쌓아나가고 있던 삶의 결실을 조금씩 보는 느낌이랄까. 돈이 많지는 않아도 한 달 생활비를 보탤 수 있는 정도는 충분하다. 그것보다도 무언가를 배우고 적용한다는 것, 하다못해 이력서에 쓸 거리가 생겼다. 군대 얘기로 이제 채우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온 지 1년이 조금 이 시점에 이런 걸 할 수 있게 되다니.. 감격스럽다. 그동안의 모든 순간이 완벽하거나 충실하진 않았지만, 잘 살아왔다는 걸 생각하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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