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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Feb 14. 2023

등산과 영화의 조합

학기의 마무리


검은숲으로의 등산을 언젠가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케이블카를 타고 가곤 했는데, 이번엔 그럴 수도 없거니와 진짜로 등산다운 등산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S-bahn을 타고 20여분. 프라이부르크 근교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등산로 진입까지 약 30여분여의 오르막길을 올랐을까. 길쭉길쭉한 침엽수림에 들어온다. 그러고 생각해보면 독일엔 우리처럼 돌산은 많지 않다. 이쪽 산에 대한 표현조차도 검은숲이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산에 오르다가 우연히 폭포라는 이정표를 보고 가보기로 한다. 사실 폭포보다는 계곡에 가까워서 아쉽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기분을 좋게 한다. 아직은 얼음장 같은 계곡물이지만 봄이 오는 것 같은 마음에 기분이 좋은 것이.



그렇게 꼬박 두 시간은 올랐을까. 해발 1,000m쯤에 도달하니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다. 요즘 날씨가 이렇게 따뜻했는데도 눈이 있는 게 신기하면서도 아직 2월 중순이니 그럴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마치 소백산 혹은 덕유산을 오르는 기분이랄까. 물론 소백산이나 덕유산이 더 웅장하고 멋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것도 기분 탓일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차를 중간에 세워놓고 올라오거나 정상으로부터 이곳까지 왔다. 돈 없는 나와 일행은 기차역에서부터 시작해서 올라왔으니 약 9km를 꼬박 오른 셈이다. 그렇게 도착한 정상. 정상 바로 옆까지 차로 올라올 수 있는지라 많은 사람은 그렇게 왔다. 눈이 꽤 쌓여있어 썰매를 타기도 한다.

사실 그동안 가본 모든 검은숲의 등산로는 사실 차로도 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몇몇 산 외에는 불과한 것이 여기에선 대부분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이 나라의 산들은 대부분 평평해서 그런가 싶으면서도 터널을 안 뚫어서 그런가 싶기도 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험난한 돌산에 길을 뚫은 경우는 없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어떤 가설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여기도 알프스 정상까지 차가 다니는 건 없을 테니까.


저 멀리 프랑스의 Vosges가 보인다. 독일에 검은숲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Vosges가 있다고 독일 친구가 이야기했었다. 가려고만 하면 갈 곳이 정말 많다.


내려오는 길은 힘이 들어 차가 다니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는 찾을 수가 없었다. 외딴곳에 떨어져 방법을 궁리하다 일면식 없는 이들에게 히치하이킹을 부탁한다. 누군가는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고 하다가 백만장자로 보이는 독일인 부부가 태워주기로 한다. 20분여를 눈치를 보며 내려갔을까. 이윽고 평지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내려서 역으로 향하는데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면서도 태워줄 거면 역까지 태워주지, 하며 배은망덕한 소리도 한다. 그것도 다 추억이겠지.


전날까지 자전거 타면서 차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거늘, 차가 없으니 그런 어려움을 겪었겠구나 싶다. 그러면서도 차를 내가 최소한 몇 년 안에는 살 일이 없겠다는 생각과 아예 사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여행이 뜻깊었던 건 차가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음 여행은 Titisee 혹은 콜마르로의 자전거 여행, Feldberg 주변에서의 등산, 스트라스부르나 바덴바덴으로 향할 수도 있겠다. 뭐 Vosges도 가볼 수 있겠다. 프랑스에서 독일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조금 더 마음을 더 먹으면 스위스로 등산을 갈 수도 있겠지.




헤어질 결심.


도착해 여독을 풀기도 전에 영화를 보러 나섰다. 취소도 하고 싶었지만 한국어에 독일어 자막의 영화이니 그러기가 아까웠달까.


독일에서 한국 영화를 보게 될 줄이야. 정말 놀랍다. 아마 기생충도 어디선가 상영되지 않았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여러 생각이 돌았다.

독일은 자막 보는 걸 싫어하는지, 1주일에 한두 번만 원래 언어와 자막으로 섞인 영화를 상영한다. 이번에 자막 영화를 보니, 짧은 독일어 실력이긴 하지만 자막이나 워낙 금방 지나가는 지라 탕웨이가 중국어로 할 때는 무슨 맥락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재밌는 건 독일 사람들에게도 이 자막이 빠르다는 사실이다. 매번 독일어 더빙을 보는 걸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할 때 화면에 집중할 수 있지도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얼만큼이나 영화를 이해했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물론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고 싶다는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도 있긴 했지만.


문장의 모든 부분을 다 읽어야만 이해가 되는 독일어나 영어 등을 생각해보면 그런 걸 생각해보면 한글이 우수하다고 생각해본다. 단어마다 오묘한 뜻이 있을 때도 있지만 의미 파악을 하기에 훨씬 편하지 않은가. 이것도 내가 모국어라서 그런 것뿐일까. 적어도 독일어는 모든 문장에 명사를 길게 만들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모르긴 몰라도 한국어가 우수한 건 맞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 영화다웠다. 좋은 의미로도, 안 좋은 의미로도. 나는 흥미로웠는데 같이 본 사람은 무슨 이야기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뒷맛이 찝찝하다고 한다. 잘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동감한다. 나로선 그래도 여운은 꽤 남았던 듯하다.


한국 영화를 비롯한 한국 문화가 이곳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는 건 참 뿌듯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이곳에서 이방인이 아닌 것은 아닌 듯하다. 한국에선 쉽게 부탁하거나 택시를 부르거나 더 잘 찾아봤을 것 같은데 참 대책이 없단 생각도 했다. 다음 여행은 조금 더 계획성 있게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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