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과 환희의 축제
카니발은 기독교의 사순절 앞에 있는 시기로, 부활을 앞두고 40일간 금욕적인 삶을 하기 전에 축제, 육식, 음주 등 모든 욕구를 분출했던 축제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카니발은 우리가 익히 들어가고 있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 곳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 프랑스 니스, 그리고 독일의 쾰른, 마인츠, 그리고 내가 사는 이 동네 프라이부르크까지.
독일에선 라인강 지방의 축제는 카니발이라 부르지만, 남서부 지방에선 Fasching, Fastnacht라고 부른다. 이름이 다른 만큼 그 뿌리나 축제를 즐기는 방식도 조금은 상이한데, 라인강의 카니발은 정치적인 색채를 띠기도 하고, 글로벌하면서도 조금은 더 형식에서 자유롭다면, 남서부의 Fastnacht는 전통적인 느낌이다. 다른 곳의 카니발도 비슷한 형태로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의 축제는 더 특이한 형식을 띠기도 하는데 특이하다 못해 기괴한 분장을 하고 다소 그로테스크한 마스크를 쓰고 시끄러운 종소리가 나는 의상을 하며 무리 지어 다닌다. 이 무리는 중세의 길드, 조합으로부터 시작됐다고도 한다. 그들이 쓰는 가면은 제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제작하고 싶어도 제작할 수 없고, 전통적으로 그 길드에 속한 이들만 쓸 수 있다고 한다. 그게 그들이 역사를 지켜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편, 이런 의상을 고려했을 때 이걸 단순히 기독교 뿌리라고 볼 수 있냐고 했을 때 갸우뚱하다. 사실 이런 문화는 단순히 기독교 문화가 아니라 이교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교도라면 로마에 의해 혹은 로마 이후 샤를마뉴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당하기 전, 라인강 동쪽인 이 동네가 ‘야만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축제를 이교도 풍습이라고 기록된 문건도 꽤 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해지니까 이때쯤 하나보나 싶기도 하다. 지독히도 춥고 해 뜨지 않는 독일의 겨울이 끝났음을 얼마나 축하하고 싶었겠는가 하면 이해가 된다. 더불어 얼마 전이 입춘이었던 걸 고려하면 동서고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다.
그래.. 금욕을 상징하는 사순절이 시작하기 전의 욕구 분출을 위한 기독교 문화와 이교도 행사의 조합이라...
저번 주말은 정말 대환장 파티였다. 마치 시끄러운 종소리와 기괴한 분장을 한 성난 황소들이 가득한 시내를 바라보는 것이 흥미롭기보다는 싫증이 났다.
성탄절이 시작하기 전, 대림 때에도 모두 길거리로 뛰쳐나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술을 먹더니 이젠 옷까지 뒤집어쓰고 단체로 몰려다니며 술 마시고 소리 지르니 마냥 즐겁게 볼 수만은 없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작년에 가죽바지 입고 무리와 맥주 축제를 즐겼던 나와는 참 생경한 모습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 2월 22일이니, 앞으로 열흘 정도 남았고, 이번 주말부터 재의 수요일까지가 제일 정점일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나도 하루 정도는 그 행렬에 끼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해가 길어지는 것도, 이 축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흐리멍텅한 이 나라의 긴 겨울이 끝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두 번째 겨울을 다른 곳에서 보내니 흥미롭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