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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Feb 18. 2023

원고 연재 후기

스트레스이자 기쁨

공기업으로부터 원고 제안을 받았다. 기후변화, 에너지 관련된 주제로..


처음에 원고 제안을 받았을 때는, 1년 넘게 브런치에 글을 쓰던 걸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것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에 더해 생각보다 훨씬 큰 원고료까지. 동기 부여가 어마어마했다.


그런 동기부여도 잠시. 글을 쓰겠다고 하니 막막했는데, 이는 그전에는 의식의 흐름대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다면, 이제는 공식적으로 내 이름을 걸고 대중들에게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도 글을 대충 썼다는 건 아니지만, 그 전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과 이건 무게감이 달랐다. 아니면 브런치에 글을 너무 경솔하게 올리는 걸까? 일견 그럴 수도 있다.




각설.

원래 머릿속에 다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고, 이미 요청받은 주제인 기후변화 관련된 쓴 글만 해도 열 번은 족히 넘는데 그런 이유로 잘 안 써졌다. 원래 썼던 걸 다시 보고, 대학교 지원하면서 썼던 에세이까지 다시 봤다.


그러고 여러 글을 보고, 쓰려고 하다 보니 놀랍게도 에세이가 아니라 이런 과학적인 글쓰기에 있어서는 영어로 적는 게 더 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초안을 작성해 부모님께 먼저 봐줄 것을 부탁드렸다.




어머니는 그 전의 브런치에 올리던 글들과 다르게 신랄하게 비판한다.


000의 문장 작법의 전반적인 습관

1) 쉼표를 너무 남발한다

2) 조사를 자주 생략하여 보고서체로 글을 쓴다. 가독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글은 노트필기나 보고서가 아님

3)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툭 빠져서 자기만 이해하는 글의 흐름을 수행한다

4) ~다 -> ~이다 로 종결할것

5)그림이나 도표를 썼으면  ~위와 같이 or 아래 그림은 아래 도표는 등등으로 명확한 지시를 해야함

6) 문장 완성이 힘들면 주부와 술부를 간단히 일치시켜보고 과감하게 끊고 접속사로 다시 문장을 형성하기 시작하라.




다 틀린 말이 아닌데 어찌 보면 이 모든 게 내 배경으로부터 나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고서체 및 노트필기식 작법. 군대에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일까. 영어로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것도 한몫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덧붙여 어머니는 전기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대부분은 전기가 깨끗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건 이미 글 서두에 그게 아니라고 언급했다고 반박해도, 별로 와 닿지 않는다고 하니 참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런 걸 공부하고 그동안 보낸 글만 10편은 넘고, 매번 이야기했을 텐데도 우리나라에서 전기에너지가 깨끗하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웠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글을 다듬었다.


예전에 한 군대에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보고서는 그걸 보기만 해도 초등학생이 이해할만큼 알기 쉽게 써야 한다.’


오래 전에 들었던 선배의 조언을 다시금 되새겼다.




다음은 아버지와의 이야기.


글은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생명이 있는 채로 돌아다니는 것이고, 나의 이름을 걸고 쓰는 글은 내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는 것을 시작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생각이 변할 수도 있기에 글의 논조가 변할 수도 있지만, 내용 자체는 틀려서는 절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아버지가 이야기한 건 무조건 팩트에 기반한 글이었다. 이는 그냥 어디서 풍문으로 들었던 걸로는 되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몇 시간이면 끝날 첨삭이라고 생각했거늘, 하루를 꼬박 더 쓰게 된다. 모든 팩트체크와 글의 통일성을 확인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원고 요청한 곳에서 마음이 들지 않아서 내 글을 실지 못한다면 그런 거겠지만, 원고를 싣겠다고 내 생각을 바꾸면 그건 진정성의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청한 곳의 요구를 다소 충족한 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 걱정도 했지만, 진정성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가슴에 새겼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공기업에서 요청받아 많은 것을 다룬 글을 썼다. 쓰다 보니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고, 무얼 채워나가야 하는지도 많이 보였다. 당장 당일 수업을 들으면서도 배운 사실을 잘 다루지 못한 것 같아 다시금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에너지전환 흐름을 다시 찾아보고, 세부적인 팩트를 내 나름대로 정리했다는 건 고무적인 부분이다.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논문을 쓰든, 이 자료 조사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거짓된 글은 쓰지 않았다는 점은 정말 잘한 부분이다. 면접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서울에 있는 에너지 전환 빌딩을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연계해 건축한 건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찾다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산에너지의 사례가 있고, 몇몇 에너지전환의 구체적인 계획, 정책 등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물론 대중들에게 홍보는 다른 문제지만.




원고를 보낸 지 3주가 넘었다. 음… 내가 적은대로 글이 연재가 되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하던 와중에 시간이 워낙 지나버리니 이제는 무덤덤해졌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로 조그만 용돈벌이를 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게 개인으로서 아주 미약한 발걸음이자 사회에는 아주 작은 영향력일지라도… 그러니 연재가 되는 날까지를 다시 손꼽아 기다려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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