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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Apr 10. 2023

시칠리아 기행

시라쿠사 - 엔나 - 체팔루


괴테가 시칠리아를 두고 했던 표현을 떠올려본다.

“Italien ohne Sizilien macht gar kein Bild in der Seele: hier ist erst der Schlüssel zu allem.”


이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번역됐다.

“시칠리아 없는 이탈리아란 우리들 마음에 아무런 심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시칠리아야말로 모든 것을 푸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원문을 조금 더 살려 표현한다면 아래와 같이 되지 않을까.

“시칠리아 없는 이탈리아란 우리 영혼에 아무런 그림도 그려내지 못한다. 시칠리아야말로 이 모든 것의 첫 번째 열쇠이다.”




나의 로드투어는 카타니아 공항으로부터 시작됐다. 첫 번째 목적지는 시라쿠사.


이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시칠리아에 무슨 그리스 문명이냐고? 그리스인들이 본인들의 식민지로 삼았던 곳이 이곳이다. 위도도 비슷하니 날씨도 비슷하고 활화산인 에트나 덕분에 땅이 비옥한지라 농사도 잘되는 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하니 지중해를 본인들의 바다로 이용하던 그들에게는 산지가 많은 본토보다도 더 좋은 땅이었을 테다. 이곳은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유레카로도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이유로 이곳은 시칠리아 내에서 고대 유적이 제일 많기도 하다. 시라쿠사 옆에 연결된 섬, Isola Ortigia 초입에 고대 그리스 아폴로 신전 유적이 있는데, 많은 유적은 로마가 멸망하면서 방치되어 묻혀있다가 후에 발굴된 경우가 잦다. 어쩌면 지금도 복원 공사를 진행하면 더 많은 유적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곳 대성당 앞의 광장은 영화 말레나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걸어가는 그 장소이기도 하다.

또 도심 내 언덕 위로 올라가면 고고학 유적이 펼쳐진다. 유적의 규모 자체가 로마를 제외하곤 이탈리아 내 최대 규모라고 느껴진다. 유적 내 그리스 극장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제일 큰 규모인데, 이곳에서 검투사들이 싸웠을 테다. 로마인들은 그렇게나 남들이 싸우는 걸 좋아했구나 싶다. 유적 자체가 채석장 역할을 했는데, 그 규모에 압도된다. 이렇게나 큰 돌이 어떻게 운반되고 건축되었을까 싶다. 그것도 2천여년 전에.

그렇게 시라쿠사를 둘러보고 체팔루로 떠난다. 본래 계획은 그리스 유적으로 유명한 아그리젠토를 가려 했으나, 동선이 너무 길어 포기하게 됐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내달렸을까. Enna라는 표지판을 보고 고속도로 출구로 나온다. 그렇게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는데 운전이 만만치가 않다. 알고 보니 엔나는 전 유럽을 통틀어서도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은 도시였다. 이 허허벌판에 어떻게 도시를 짓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이곳 주민들은 해적을 피해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시내를 훑어보고 다시 체팔루로 향한다. 시칠리아 내 고속도로는 정비가 되지 않은 곳이 참 많다. 운전하기 쉽지 않다. 바다를 낀 고속도로는 괜찮은 편인데, 내륙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구글맵도 부정확한 정보를 주는 경우도 종종 있고.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시네마 천국의 촬영장소.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으며 시내에 진입하는데, 도착하자마자 모든 여행의 여독이 풀리는 느낌이다. 숙소 주인은 너무나도 친절한 이탈리아 남부 아저씨다. 그를 만났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여행은 무언갈 보는 것도 보는 거지만,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인 건 아닐까.


짐을 풀고 바다로 나온다. 기대하던 에메랄드빛 바다. 아직 해수욕하기에 적합한 수온은 아니지만 발을 담가보기로 한다. 어쩌면 한국에서 살면서 바다를 계속 볼 수 있었다면 이런 바다에 감동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한국에서 왔다면 시라쿠사의 유적에 훨씬 감동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바다를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대륙에 사는 내겐 이 바다가 힐링 그 자체였다. 한적한 소도시의 아름다운 바다. 이것이 제일 큰 감동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 바다는 어쩌면 강원도 동해, 영월의 해변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규모는 그보다 작았는데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다른 사람이 봐도 그랬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시내를 올라가 본다. 체팔루는 참 작은 도시다. 물론 관광객들은 있지만, 세속의 때가 덜 묻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러 생각을 하며 이곳에서는 근사한 식사를 해보기로 한다. 우연히 미슐랭 레스토랑을 갔는데,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경험했다. 역시 돈이 좋은 건가 싶다. 음식 맛도 훌륭했는데, 그렇다고 그 맛이 기존에 다른 식당과 엄청나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훌륭한 식사였고, 가격도 합리적인 편이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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