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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un 01. 2023

브레멘 여행기.

문화예술의 중심지이자 쇠퇴한 대도시


누군가에게 들었다. 브레멘은 완전히 죽은 도시 같다고. 가본 적도 없고 갈 엄두도 없는 거리의 도시이기에 관심도 적었는데 함부르크 방문과 동시에 찾는다. 사실 도시 자체가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보낸 친구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유가 더 컸다.


함부르크에서부터 약 한 시간을 타고 도착한 브레멘. 물론 어느 도시나 중앙역 주변이 깨끗하고 한산한 경우는 적긴 하지만, 도시 자체의 느낌이 썩 좋지 않다. 친구의 안내 덕분에 트램을 타고 대학교 쪽으로 가는데, 인구 55만의 대도시로 하기엔 시내 규모가 너무 작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같은 한자 동맹 도시이자 똑같이 강을 끼고 항구 도시로 발달한 두 도시가 지금의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브레멘의 항구는 브레멘 도심으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 형성되었고, 함부르크는 항구 자체도 강을 따라 형성되었다는 점과 애초에 함부르크에 흐르는 Elbe강이 브레멘에 흐르는 Weser 강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 지리적 위치가 북동부 유럽의 허브가 될 수 있는 함부르크에 비해 브레멘은 다소 서쪽에 치우쳐져 있고, 네덜란드 혹은 벨기에의 대항구와의 경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가설을 세웠다.


실제로 브레멘은 전후 해운과 조선업, 제조업으로 경제를 회복했는데,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독일 중공업 쇠퇴와 맞물려 조선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위기가 닥쳤다고 한다. 이에 시는 여러 부양책을 펼쳤으나 그 불황을 극복하지 못했는데, 소득 자체는 독일에서도 높은 편이지만 실업률이 16개 주 중에서도 제일 높고 이민자가 독일 내에서도 가장 많을 정도이니 내가 들었던 이야기가 틀린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실제로 저녁 시간이 되자 독일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다소 불안한 치안을 몸소 느낄 수도 있었고, 노숙자 비율도 많은 듯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중세 흔적이 많은 도시의 시청사와 그 광장은 아주 볼만하다. 이외에도 도심 바로 옆에 큰 강이 흐르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있는 구시가지는 좋았다.

또한, 브레멘의 시립미술관은 독일에서도 이는 독일 내에서도 제일 오래된 미술관 중 하나로, 굉장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미술관장이었던 Gustav Pauli의 역할이 지대했다. 일례로 그는 인상주의 운동의 큰 지지자였던 그는 고흐의 양귀비밭(Poppy Field)을 당시 많은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거액을 주고 사들였는데,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안타까운 건 내가 갔을 땐 고흐의 작품이 없었다는 점이다. 미술관은 고전 작품부터 백남준 선생의 비디오아트까지 전시할 정도로 많은 컬렉션을 가지고 있고, 훌륭한 작품이 많았다. 브레멘이 역사적으로 독일 내 문화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로서 기능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안타깝게도 상기한 이유로 브레멘 경제가 살아나기는 어려울 듯하고, 나로서도 도시 자체의 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로 다시 방문할 일은 없을 듯하다. 사실 독일 전역을 돌아다녔다고 할 수는 없으나 거의 대부분 대도시는 가봤고, 이젠 독일 도시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생각에 이르러 이제는 나의 독일 여행기가 더욱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겠단 우려도 생긴다. 어쩔 수 없이 돌아다니면서 군데군데 보긴 하겠지만.


짧은 견해지만 200년 전 괴테가 그러했듯,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를 항상 동경했던 것처럼, 나도 그런 입장을 견지하는 건 유럽 대륙에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도 이른다. 사실 그보다도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마음이 제일 기쁜 건 집이 제일 좋다는 점, 그게 여행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 살 수 있음을 무한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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