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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un 01. 2023

함부르크 여행기

바다와 음악, 낭만이 존재하는 곳


베를린에 이어 독일 제2도시이자 로테르담, 안트베르펜에 이어 유럽 세 번째의 항구 도시인 함부르크. 인구가 185만명으로 유럽에서도 7번째로 큰 대도시이자 수도를 제외하곤 유럽 대륙에선 제일 큰 대도시이니 한국으로 치면 크다고 느끼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유럽 기준으론 엄청난 대도시임이 분명하다. 독일에서 기차를 타본 이는 알겠지만, 독일의 KTX인 ICE의 북쪽 종착역은 대부분 함부르크 혹은 베를린이다. 종착역이란 이야기는 독일 남서쪽 끝단에 사는 내겐 그만큼 멀다는 이야기를 의미하겠다. 실제로 고속열차임에도 6시간 반, 7시간의 기차를 타야 도착하니, 쉬운 여정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래도 언제 가보겠나 싶어 1주일의 짧은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방문한다.


독일에 온 지 이제 어언 2년이 되어 가는데, 뒤셀도르프보다 북쪽으로 가본 적이 없다. 함부르크에 진입할 때부터 기차 차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독일도 바다가 있었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위도가 워낙 높다 보니 겨울의 일조량은 아주 부족한 편이고 그런 이유로 여름엔 방문하기 좋지만, 11월만 되어도 스산하고 짧아진 해 때문에 거주하는 데에 있어 애로사항이 크다.


함부르크의 정식명칭은 Freie Hansestadt Hamburg.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함부르크는 한자 동맹의 중심지였던 곳으로서 현재 독일 행정구역상으로도 독립된 주의 위치를 보장받는다. 이는 수도 베를린을 제외하곤 오직 브레멘과 함께 유이한 경우인데, 함부르크와 브레멘을 둘러싼 독일의 행정구역인 Niedersachsen 주와 두 도시의 역사적인 뿌리부터 발전과정까지 정체성이 너무나도 다른 이유에서 기인한다.


대부분 라인강 동쪽으로 꽤나 멀리 떨어진 엘베강에 위치한 함부르크는, 라인강을 본인들의 국경선으로 정하고 도시를 구축했던 로마와는 연관성이 없고, 서중부 유럽의 최강자였던 샤를마뉴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라인강을 훌쩍 넘어 훨씬 동쪽인 엘베강까지 정복사업을 펼쳤으니 함부르크가 그때 만들어졌다는 건 신빙성 있는 이야기일 테다.


함부르크는 중세를 거쳐 북유럽과 교역하는 대항구로 발달하는데 이는 신성로마제국황제이자 바르바로사(붉은 수염)로 불렸던 프리드리히 1세에 의해 자유무역지대로 설정되는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어 한자동맹 결성으로 이어졌는데, 그 본부는 함부르크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뤼벡. 발트해와 북해의 교역을 꽉 잡았던 한자동맹은 16세기 신대륙 발견과 처참했던 30년 전쟁 등으로 인해 영향력을 잃어간다. 그 명맥은 이어졌으나 30년 전쟁 이후엔 실질적인 해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후,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은 완전히 해체됐는데, 당시까지 Free Imperical City, ’자유제국도시’였던 함부르크는 지금의 이름인 Freie Hansetadt, 자유한자도시 함부르크로 그 명칭을 바꿔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함부르크는 그 이후에도 숱한 위기를 겪었는데 매번 다시 도시를 복구하여 부와 권력을 이어갔다. 제일 최근에는 독일 다른 도시들과 비슷하게 2차세계대전 영국, 미국 공군에 의해 도시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었다. 그 참혹한 과거의 흔적은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데,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시내의 제일 큰 성당을 복구하지 않고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을 조성하였다. 여타 독일 도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동독과 서독의 경계선이었던 철의 장막이 함부르크로부터 불과 50k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1990년 통독 이후 이 같은 정치적인 장벽이 해제되며, 더욱 번성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게 된다. 현재는 독일 내에서도 손꼽는 부자 도시이기도 하다.


한편, 또 흥미로웠던 점은 전설적인 영국 밴드 비틀스가 고향 리버풀을 떠나 이곳에서 2년여 살면서 공연했다는 점이다. 존 레논은 이런 말을 했다.

‘I might have been born in Liverpool, but I grew up in Hamburg.“


그래서 가봤다. 무언가 뮤지션의 향기라도 느낄 수 있을까 해서. 아쉽게도 나의 기대는 부응하지 못했는데, 비틀즈를 기억하는 광장과 골목거리는 사창가로 꽉 차 있었다. 현재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미국인 친구는 내게 ”여기 구리니까 오지 말자고 했잖냐.“ 하고 핀잔을 주는데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재밌는 건 60년대초 비틀즈가 이곳에서 공연했던 당시에도 이곳은 원래 이런 장소였다는 점이다. 2년 동안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음악 하나만 붙잡고 본인들의 음악을 알아주지도 않던 제일 열악한 상황에서 2년간 갈고 닦았기에 그들이 지금의 전설적인 밴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존 레논이 인터뷰를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구역이 그런 방식으로 유지가 되는 것도 항구 도시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절대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뱃사람들의 수요가 있기에.


손꼽는 부자이면서도 항구 도시로서 그런 어두운 단면도 존재하는 함부르크. 여러 건축물이 그동안 봤던 양식과는 꽤 괴리가 큰데 한편으론 독일 내륙보다도 덴마크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더 든다. 실제로 거리도 가깝고 바이킹이 함부르크까지 영향력을 뻗칠 때도 있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lbphil 등 디자인으로 꽤 유명한 건축물도 존재한다. 또, 바다 및 운하가 낀 덕분에 곳곳에 카누, 카약을 빌려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강, 운하를 따라 어떤 곳으로 가면 물 바로 옆에 있는 대저택을 마주하기도 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바다이자 강의 페리를 타는 것도 독일 내륙에선 누리기 어려운 호사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유럽 최대 항구 중 하나인 이유로 내겐 또 강한 영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8년 전, 해군 순항훈련전단의 일원으로 기항했던 로테르담과 비슷하다는 점에서였다. 그런 이유로 회상에 잠겨 해군 소식을 알아보니 올해 해군 순항훈련전단이 이곳 함부르크를 방문한다다는 사실을 접한다. 8년이 지나 후배들이 이 먼 유럽 대륙까지 온다는 생각을 하니 나 또한, 이 먼 거리를 다시금 와야겠단 생각이 든다. 순항훈련전단에 승조한 동기생과 옛 전우들을 보는 것도 좋은 재회가 되겠겄니 싶기도 하면서.. 그렇게 다시 이곳을 돌아오리라 다짐하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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