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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un 09. 2023

튀빙엔 여행기

유구한 역사과 더불어 첨단 산업, 미래가 밝은 대학도시


튀빙엔. 독일의 유명한 대학 도시. 많은 유명인사가 있다. 첫째로, 헤겔. 헤겔의 철학은 마르크스 철학의 토대가 되었고, 파시즘은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 및 악용하였으니 그의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외에도 데미안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가 4년간 서점으로 일했던 곳으로, 그가 일했던 서점은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인문학만 유명한 줄 알았지만 이에 그치지 않는다. 150여년 전, 최초로 DNA가 발견된 곳이 이곳 대학이고, mRNA 관련된 연구가 90년대 후반부터 이어져 BioNTech(Pfizer), Moderna 등의 코로나 백신의 핵심 기술이 되기도 했다. 독일 내 바이오산업의 메카라고 볼 수 있겠다. 최근엔 이와 더불어 구글, 아마존, BMW, 벤츠 등의 그룹 및 대학, 독일 내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최대 기관인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함께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Cyber Valley를 구축했다. 위 같은 사실은 필자도 과문해서 잘 몰랐던 사실인데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선종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곳의 대학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었다. 엄청나게 유서가 깊은 곳이다.


특이한 점은 독일 남부는 가톨릭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받아들여 시내의 교회 건물이 개신교이다. 이 지역이 Württemberg 공국의 영토였고, 내가 그동안 지내왔던 Bayern과 Baden과는 다른 역사가 있었기 때문인데, 당시 Württemberg 공국의 공작 울리히 1세가 개신교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튀빙엔을 제외한 주변 도시는 가톨릭이 많다는 건데, Württemberg 공국, Schwaben 지역은 구교와 신교가 오묘하게 섞였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이는 앞서 언급한 역사적인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직선거리로 따지면 100k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손쉬운 이동을 제한하는 건 이번에도 역시 검은숲이다. 검은숲을 아예 가로지르는 철도는 없는 이유로, 기차를 이동했을 경우엔 최소 두 차례 갈아타고 세 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버스는 두 시간 반 만에 갈 수 있다. 버스를 타보기로 한다. 이 버스의 종점은 뮌헨. 굽이굽이 검은숲을 따라 산길을 올라가며 지나갔던 풍경이 이제는 익숙하다.


도착한 튀빙엔. 도심 내에 Neckar강이 가로지르는데 이는 검은숲으로부터 발원되어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만하임에서 라인강에 합류한다.

인구가 9만 정도이니 내가 사는 곳보다 훨씬 작은 도시이다. 그중 학생 수가 2만 5천여 명, 교직원까지 하면 5만 명 정도 된다고 하니 최소 둘 중에 한 명은 대학교 사람인 셈이다.


사실 수많은 독일의 도시를 가봤기에 이 도시만 유독 아름답다는 점은 느끼지 못했다. 독일 사람들도 이곳으로 여행을 많이 온다는데 나는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물론 아름다운 도시는 맞다. 유구한 역사와 앞으로의 미래 산업까지 있어 도시 자체가 계속 유지될 수 있고, 그런 이유로 물가도 꽤 비싼 편이다. 사람들도 그런 이유로 순한 듯하고, 외국인에게 호의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은퇴 이후 튀빙엔으로 이사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관련된 직장이 있으면 살기에 좋은 곳으로 보이지만, 유구한 역사에 비해 도시 규모 자체가 작다 보니 다소 심심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행 중 우연히 처음 알게 된 분과 인연이 닿아 그분의 집에 하루 묵게 되었다. 신세를 많이 졌다. 그 분의 거처는 튀빙엔으로부터 11km 떨어진 근교, 인구 4만명의 Rottenburg이다. 이 조그만 도시는 가톨릭 주교좌 성당이 있는 곳인데, 독일 내 주교좌 성당이 있는 곳 중 제일 작은 규모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이유로, 튀빙엔도, 그리고 옛 Württemberg 공국의 수도이자 지금의 Baden-Württemberg 주의 주도인 슈투트가르트도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가톨릭의 큰 축일 중 하나인 성체성혈대축일이었던 관계로 야외 미사는 물론이고 미사 후, 주교를 비롯한 사제, 신자들의 행렬도 있었다. 이는 꽤 오래된 전통으로, 독일만 하는 건지 다른 나라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선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흥미로웠다. 아마도 이와 같은 행렬을 팬데믹 이후 올해 최초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기차를 이용했는데, 정말 조그만 기차를 타게 되니 시골감성이 느껴진다. 축구 유니폼을 입은 이곳 주민들이 타서는 왁자지껄 본인들의 방언을 쓰는데, 1년 전 내가 머물던 바이에른의 소도시가 떠오른다. Ja가 아니라, Jo로 대답하는 그들의 대화를 멀리서 들으며 잠깐의 향수에 빠지기도 했다. 평화로운 기차는 검은숲을 거슬러 올라가 Pforzheim에 도착했는데, 나름의 대도시에 도착해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데 기차가 정말 만석이다. 출퇴근길의 서울 2호선이 떠오르는데 이는 독일 전역에서 시행되는 49유로 티켓의 영향이다. 고속열차를 제외하곤 한 달 49유로로, 모든 대중교통수단을 탈 수 있는 정책인데, 이것이 휴일이다 보니 이런 ‘불상사’를 낳은 셈이다. 독일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정말 많은 인파를 뚫고, Karlsruhe에 도착한다. 이 기차역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았는데, 그런 이유로 나는 돈을 더 지불하고 고속열차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한 시간 남짓의 환승 시간 탓에 Karlsruhe 도심을 도는데, 내가 6개월 전에 기억했던 우중충한 도시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도시의 건축물이 아름답다. 옛 Baden 공국의 수도였으니 그 건축물이 아름다울 수밖에. 겨울엔 어딜 가도 그랬겠거니 싶으면서도 ‘프라이부르크는 겨울에도 좋았는걸.’ 하면서, 내가 사는 도시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다소 현실을 등진 이틀을 뒤로 하고 내 삶으로 돌아가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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