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독 바다청년 Jul 23. 2023

빌딩에서의 깨끗한 에너지 소비를 위해

에너지전환의 가장 큰 축. “Heat”


총 탄소 배출량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빌딩에서의 에너지 소비. 이를 깨끗하게 바꾸는 법은 간단하다. 먼저 건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빌딩을 에너지 소비의 객체로만 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체로써 지붕 위의 태양광, 태양열 발전, 히트펌프 등을 통해 필요한 에너지, 냉난방을 공급하게 하면 된다. 너무 간단한가. 조금 자세히 들어가 보자.


EU의 가정 내 에너지 소비량을 살펴보면, 난방(Space Heating)에 64.4%, 온수로 14.5%, 전기 13.6%, 요리 6%, 냉방은 0.5%에 불과하다. 난방과 온수, 모두 열 분야(Heating Sector)이니 이것을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느낌이 온다. 난방에서 제일 효과적인 방법인 바닥난방인데, 이는 라디에이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범위를 데우기에 더 낮은 온도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생각하면, 사실 온돌을 사용했던 선조들이 지혜로웠던 셈이다.


이 열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가스보일러, 지역난방, 히트펌프(Heat Pump) 등이 있다. 전통적인 가스보일러는 설치된 파이프로부터 열을 공급받는 개념이 현재까지 제일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난방은 소규모의 발전소가 그 지역 열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가스보일러보다는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지역난방도 석탄, 가스를 통해 열을 생산하는 방식에서 다른 발전소 및 데이터센터에서 나온 폐열, 혹은 바이오매스, 열병합발전소와 같이 탈탄소 내지는 저탄소 운용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다음은 태양의 복사열을 이용해 유체(보통 물)를 데워 탱크를 통해 공급하는 방식인 태양열(Solar Thermal)이다. 마지막으로 히트펌프. 공급원(공기 혹은 지하의 물)으로부터 공급된 열을 압축, 가열해 열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압축기가 전기로 가동되니 결과론적으로 전기를 사용해 열을 공급하는 방식인데, 전기가 완전하게 깨끗하게 생산된다면 이거야말로 제일 지향할만한 열 공급방식이겠다. 태양열, 히트펌프를 도입하면 열 저장장치로 물탱크도 같이 사용하기도 하는데, 난방과 온수 두 용도의 온도 범위가 달라서 이런 점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하기도 한다.





열을 공급하는 건 알아봤다. 다음은 이 열이 잘 날아가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려해본다. 이 대표적인 예로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로, 겨울철 난방 수요가 보통 집보다 90%가 적기도 한다. 그 이유는 열 손실을 위한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조치가 취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조치라 한다면, 계절별 태양 조도를 고려한 지붕 설계 및 남향 배치, 단열 재질의 창문, 벽이 두껍고 건물의 무게를 무겁게 만드는 것이다. 무게가 무거울수록 온도의 변화가 적은데, 한 가지 예로 유럽의 오래된 성당은 엄청나게 무거운 덕분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다음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빌딩의 예를 들어보자. PV(태양광 발전)를 지붕에 설치하고, 히트펌프를 구동하는 데다가 전기차까지 있다고 가정한다면, 전기차의 배터리로 태양이 내리쬐지 않는 저녁 전기를 공급하고, 낮에 남는 잉여에너지로 배터리를 충전하고, 이 전기로 히트펌프를 구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물탱크 및 지열의 열 교환을 통해 추가적인 에너지저장장치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100% 모든 에너지를 이렇게 공급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러려면 너무나도 많은 PV와 전기차뿐만 아니라 대용량의 배터리가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목표는 100% 에너지 자립이 아니라 유휴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더욱 친환경적인 컨셉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사례를 생각해볼까. 우리나라는 유럽보다 냉방 수요가 대단히 많다. 온도를 낮추는 방법에는 단순히 에어컨을 켜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들이 존재한다. 태양의 조도를 줄이는 디자인과 건물 배치, 지열 냉난방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지열 냉난방 시스템은 땅의 큰 열 관성을 이용해 하나의 열 교환소로 이용하는 개념인데, 여름에는 땅 온도가 외부온도보다 낮고, 겨울에는 그 반대이니 자연스럽게 냉난방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 새로운 빌딩에는 비교적 쉽게 적용할 수 있다.



source: https://5gdhc.eu/5gdhc-in-short/

위의 개념도는 냉난방을 단순히 각각의 수요로 보는 게 아니라, 냉방이 필요한 곳에 냉방을 하고 그 폐열을 난방에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방식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개념을 도식화한 그림이다. 마치 4차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를 5GDHC(5th Generation Distrcit Heat and Cold)라고 하는데, 건물 분야의 탄소중립을 위해선 이런 접근 방식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뿐만 아니라 각 분야를 따로따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즉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 운송, 건물, 산업 분야를 연결하는 섹터 커플링이라는 개념도 많이 논의되는데 이런 조치가 점점 더 필요한 건 자명한 일이다.




다시 빌딩으로 돌아간다.


얼마 전, 이사할 새로운 집을 알아보다가 위 같은 컨셉으로 건축되는 집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집주인이 히트펌프, 바닥난방, 패시브하우스 컨셉의 일부는 물론이고, 단열로써는 최고 재질의 창문인 세 겹의 유리 창문(Triple Pane Glass)을 도입했고, PV를 설치할 생각도 있다. 최초엔 PV를 지붕에 설치하는 줄 알았지만, 발코니에 설치를 고려한다고 한다. 지붕에 설치하면 10kWp 기준 초기 투자비용이 2천만원이 넘어간는데,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 전기를 전력망에 팔아야 하는데 예전만큼 그렇게 그 전기료의 수익성이 좋지 않으니 집주인으로서는 매력이 떨어지는 옵션이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살지도 않는 집에 세입자와 행정적인 서류를 추가로 작성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부분.


대신 소형 PV모듈, 850Wp 정도로 설치하고, 세입자가 설치 비용을 지불하고 운용하는 게 더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유는 지붕에 비싼 비용 내고 지어봐야 세입자한테 혜택이 돌아오는 것도 없고 대신에 조그만 모듈을 설치하고, 태양이 쬘 때 세탁기를 돌리고, 전기차나 전기자전거를 충전하는 식으로 필요한 전기만 직접 사용하면 최대 2년 안에 초기 투자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찾아보니 현재 프라이부르크 시에서 200유로의 보조금이 나오는데 초기 투자비용이 500유로 안팎이 될 듯하다. 그리고 그 비용은 2년 안에 돌려받게 될 터이니, 결국은 세입자에게 더 좋은 옵션이다. 꼭 돈 때문이 아니라 이런 컨셉이 얼마나 바람직한가.


이 같은 건축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최근 발표된 독일의 빌딩 관련된 정책이 관련이 있다. 내년 1월 1일부로 새로 건축될 건물에 있어선 65%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하며,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난방 시스템의 수리는 금지될 거라는 것이 그 핵심이다. 추가적으로 화석연료로 가동하는 난방 시스템은 2045년 부로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는 점도 포함된다. 집주인이 원래 환경에 관심이 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같은 정책이 새집을 짓는데 에너지 효율을 위한 조치 및 PV 설치 등의 시도를 하게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밌는 건 집주인도 이런 작은 태양광 발전을 설치할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이웃이 이걸 설치하고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덧붙인다. 사실 사람들은 국가 정책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정책이 정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친환경적인 시도가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고, 누군가 이걸 시작해야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그 건물에 직접 거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내가 꿈꾸던 컨셉을 실제로 구현한 집에 직접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살펴본다. 최초에 언급한 빌딩의 에너지 소비가 총 탄소 배출량의 20%라는 점은 단순히 운용의 측면에서만 바라본 것이고, 실제로 건물에 필요한 자재를 자연에서 끌어내는 것부터, 생산, 건축, 그리고 폐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합한다면 EU 기준, 빌딩의 에너지 소비는 최종 에너지의 40%를 차지하고, 총 탄소 배출로 따지면 역시 40%에 달한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그저 운용 측면에서만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을 넘어 모든 과정을 합쳐 에너지를 덜 배출하게 하는 것이 제일 큰 방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모든 친환경 컨셉을 다 도입한 건물이 건축 당시 배출하는 탄소가 워낙 많은지라 나중에 에너지를 덜 소비한다고 한들, 꼭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건축물을 만드는 과정이 점점 덜 탄소 의존적으로 된다고 했을 때,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시도를 해야 함은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후변화의 경제적인 관점, 탄소가격제를 중심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