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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Jul 23. 2023

에너지 시스템 모델링

에너지전환의 큰 그림


모델을 구분하는 방식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크게는 White Box Model, Black Box Model. 전자가 물리적인 수학식을 바탕으로 주어진 input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input과 output, 즉 데이터를 바탕으로 반대로 수학식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방법을 섞은 것을 Grey Box Model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그저 데이터로만 접근하는 것보단 더 많은 수학식이 적절하게 해석될 수 있을 때, 즉 White Box 쪽에 더 가까워질 때 모델이 정확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완전한 Black Box Model, 모든 분야에서의 ‘머신러닝으로의 접근방법’은 어디까지나 많고 선별된 데이터가 있어야지만 제대로 된 모델링이 가능하고, 이것만이 미래를 여는 만능 열쇠는 아닌 셈이다.


최근에 모델링 관련하여 새로운 용어를 들었다. 이번에는 Brownfield와 Greenfield. 먼저, Brownfield Approach는 기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개념이고, Greenfield Approach는 완전히 새로운 기반에서 시작되는 연구이다. 이름이 뭘 그리 중요하냐 싶을 수도 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예 접근 방법 자체가 달라서 이렇게 서술해본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REMod (Regenerative Energy Model). 독일에서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전기 생산에서 얼마만큼의 PV(태양광 발전), 풍력발전을 더 설치해야 하는 것부터 해서 섹터별로 이뤄야 하는 과제를 최적화 방법을 통해 수치화한 모델링 결과다. 나는 작년에 이 컨셉을 처음 듣고, 모든 분야를 고려해서 탄소중립을 만드는 방향을 수치화했다는 연구 방향 자체에 굉장히 감명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모델을 직접 만든 이의 강연을 들었다.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한다는 걸 제일 중요한 input을 포함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회가 이를 얼마만큼 에너지전환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각기 다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예를 들어, 최악의 시나리오로 사람들이 본인 집 앞에 풍력발전이나 PV를 설치하는 걸 극렬히 반대한다고 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저장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모델링 결과이다. 그리고 이걸 실제로 탄소 배출의 지대한 영향이 있는 산업 및 농업 분야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굉장히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다소 놀라운 점을 알게 됐다. 이는 지금 발표된 결과 자체가 하나의 Node로만 이뤄진 것이며, 지금까지는 10개의 Node까지만 고려했다고 하는데, 하나의 Node라는 건 전기가 발전된 곳에서 바로 소비된다는 가정이다. 독일에선 북쪽의 풍력발전을 통한 남아도는 전기를 산업이 많은 남쪽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고려 등이 꼭 필요한데, 이런 과정 자체가 아예 생략된 셈이다. 마찬가지로 PV가 이곳저곳에 설치된다고 했을 시, 이것이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한 고려도 없는 것이다. 나로선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걸 바탕으로 PV나 풍력터빈이 2045년까지 더 설치해야 한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중에 깨달았다. REMod의 연구 기반은 Greenfield Approach, 즉 기존에 있는 시스템을 배제하고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소비되어야 하는지를 만든 모델링이라 현실성을 떠나 아예 다른 접근방법인 셈이다. 물론 Node를 더 많이 늘리다 보면 어떻게 전력망을 최적화할 수 있을지도 발전할 수 있는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반대의 예를 들어본다.


그동안 나는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Brownfield Approach로 에너지 시스템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독일 내 주요 발전소의 발전방식, 발전용량, 가격, 탄소배출량, 효율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에너지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구매순위(Merit Order) 효과에 따라 제일 싼 전기부터 비싼 전기까지 차례로 나열한다. 가격순은 재생에너지, 원자력, 석탄, 가스 순이다. 공급가격은 수요와 맞닿아 떨어지는 그 마지막 발전소의 전기가격으로 결정된다. 대개 석탄 발전소의 가격에 따라 그 가격이 형성된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y축의 한계비용(marginal cost)가 0인 것은 재생에너지, 그다음부터 원자력, 석탄, 석유, 가스 발전 순인데 가스 발전이 지나치게 비싼 건 이 데이터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가스 폭등 때문에 그러하다. 최근 데이터는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형성된다. (올해 4월 부로 원자력 발전은 중단되었으니 그래프상 초록색은 없어지고 그 갭을 다른 에너지가 채우고 있다.)


대관절. 이런 방식으로 최소한의 가격으로 에너지를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저장장치까지 도입하면, 완전한 실제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독일 전체 전력망의 대략적인 발전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흥미로운 과제 결과도 있었는데, 이는 향후 배터리 가격이 이상적으로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전기를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식으로의 경제적인 논리는 맞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었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경제적인 논리로만 에너지저장장치를 접근하기보다는 앞으로 늘어날 태양광, 풍력발전으로 인한 전기 수급의 불균형이 있을 때 이 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른 대안으로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산업 분야에서 전기 수요가 많을 때 생산을 적게 만든다는 수요대응(Demand Response) 등이 있는데, 이도 간단한 수학식으로 모델 내에 구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델을 바탕으로 독일 전체의 전력망에 적용하여 각 Node별 전기 수요, 발전량을 고려한 전력망 내 전송선로의 부하, 그리고 모자른 에너지를 보충하는 송전 방식, 재생에너지의 출력제한(Curtailment) 등까지 모두 구현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쟁점이 되는 분야는 독일 내 전력시장에 관한 분야이다. 현재 독일은 권역별 가격(Zonal Pricing)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독일 내에서는 모두 똑같은 전기가격으로 공급받는 방식이다. 무엇이 문제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 독일은 북부 및 북해의 많은 풍력발전으로부터 수요가 많은 남부에 전기를 보내고 있다. 정작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및 바이에른 주는 그에 비해 발전량이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계속 권역별 가격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 풍력터빈을 바이에른에 설치하든 북해에 설치하든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사업가는 어디에 터빈을 설치할까.


당연히 바람이 많이 부는 북해에 설치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가뜩이나 높은 전송선로의 부하가 더욱 부가될 것이다. 이런 논리를 비롯해 더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위해 모선별 가격(Nodal Pricing)이 고려되고 있는데, 이를 제일 가로막는 건 전기가 공공재인만큼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전기료를 내는 게 독일 헌법상 맞지 않는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그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소한 북독일과 남독일로 권역을 나누자는 의견이 꽤 많이 진척했다는 카더라 통신을 듣는다.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쉽지 않은 논의임에는 분명하다.




대관절. 마지막으로 학기 말 과제가 있다.


나의 그룹 주제는 2030년 독일의 전력 시스템을 모델링하는 것이다. 원래는 독일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2045년에 전력화와 탄소중립이 다 되었을 때 전력망 부하가 어찌 될지를 알아보려 했는데, 튜터들이 전기수요부터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다고, 어쩌면 이건 박사 논문감이라고 하며 본인들이 하는 이 수업에 그 정도까지 노력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그 범위가 다소 축소되게 되었다.


길고 길었는데, 우리는 결국 하나의 Node였던 REMod 모델, Greenfield Approach과 다르게 Brownfield Approach로 우리는 수백개 내지는 천개에 달하는 Node와 이를 연결하는 전력망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터이다.


REMod 모델을 만든 이는 이야기했다. 이 모델 자체의 결과만을 가지고 바로 PV 혹은 풍력발전을 얼마만큼 설치한다고 섣부른 정책 결정을 하려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 아니고, 이 결과를 두고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기후변화 관련하여 이바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그런 이유로 오픈소스로 공개하지 않는데, 이는 몇몇 이들이 이 결과를 단편적으로 편집, 옳지 못한 방향으로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모든 모델은 현실을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툴이니 어떻게 모델링하고, 이를 해석하는 것도 모델을 만드는 사람의 몫이다.


그래. 완벽한 게 어디 있겠는가. 모델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지, 완전한 현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찌 됐든, 이 분야에 조금 흥미가 가긴 했다. 논문 쓰는 석사생을 구한다고 했다. 돈이 들지 않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것이다. 정말 모르겠다. 이게 내가 앞으로도 하게 될 분야인지는. 그래도 이렇게 큰 그림을 직접 코딩한다는 건 참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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