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다니엘 Aug 28. 2023

로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올림픽 수도


로잔. 스위스 제4대 도시로, 제네바와 30분 거리에 있고, 같은 레만호를 끼고 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가 있는 곳이다. 제4대 도시라 해봐야 인구는 14만 명에 채 미치지 못한다.


로잔은 로마 시대부터 존재하던 도시로, 지금의 Lausanne이라는 이름도 로마 시대의 Lousanna라는 이름으로부터 유래했다. 이외에도 로마 당시의 이름이 남아있는 곳이 많다. 서로마 멸망 이후, 로잔은 부르고뉴 왕국의 소도시였는데, 이후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중심지로 성장한다. 16세기경, 이웃 도시 베른으로부터 침략받고, 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는데, 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섞여 있고 종교에 있어 자유로운 도시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프랑스 내 칼뱅파 프로테스탄트였던 ‘위그노’들은 태양왕 루이14세를 비롯한 전제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프랑스 내 거주가 힘들었는데, 로잔이 그들의 피난처가 된다. 프랑스와의 지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역사 덕분에 지금까지 불어권의 영향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로잔으로,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바람도 쐬러 갈 겸 기차에 몸을 싣는다. 몇 주간 이어지던 불볕더위가 한바탕 쏟아지는 폭우로 끝났는데, 역시 가는 날이 장날인지 비가 억세게 쏟아졌다. 날씨만 좋았다면 알프스를 올라가진 못하더라도 더 훌륭한 경치를 볼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로잔은 스위스 내에서도 유난히 경사가 많이 있는 도시로 지하철역 자체도 기울어져 있다. 구시가지와 역은 언덕 위에 있고, 호숫가에는 세련된 건물들이 많다. 역시 불어권의 스위스라 그런지 언어뿐만 아니라 건축 양식도 독일보다는 프랑스의 그것과 유사하다. 같은 스위스라도 바젤이나 취리히보다는 프랑스와 더 가깝다고나 할까.


친구를 따라 로잔공대를 먼저 방문해본다. 국제적인 느낌도 느낌이거니와 현대적이고 특이한 건축 양식이 눈에 띈다. 예전에 뮌헨공대 메인 캠퍼스를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학교의 역사는 169년, 공과대학으로는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이다. 특이한 점은 대학이 조그만 언덕 위에 있는지라, 그 아래 레만호와 건너편의 프랑스 알프스의 전망이 있다는 사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면 그 유명한 에비앙에 도착한다. 꼭 호수 안 건너도 좀만 가도 주변이 다 알프스이긴 하다. 참 좋은 환경이다. 부럽다면 많이 부러웠다.

비가 그칠 즈음,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로 내려가 봤다. 호숫가에는 부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럭셔리한 주택과 차가 주차되어 있는데, 또 아주 부러웠다. 다음 부러운 건, 그 호수를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 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호수가 어마어마하게 큰지라, 조정과 같은 해양스포츠를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어서 많은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요건도 갖춰져 있었다.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쭉 따라가 보니 축구 경기장은 물론이고 테니스 코트 등이 있는데, 그 이름에 주목하게 된다. 쿠베르탱과 전 IOC 위원장이었던 사마란치. 이곳이 올림픽 수도라는 걸 실감하게 한다. 올림픽 위원회 본부건물을 지나 올림픽 박물관까지 호수를 따라 쭉 간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운동을 좋아하는지 당일에도 트라이애슬론 경기 때문에 도로가 통제되어 있었다. 로잔 사람들은 운동을 진심으로 즐긴다는 게 느껴졌다. 안 그런 사람이라도 천혜의 자연환경인 이곳에서 살면 변할 것 같다고나 할까.

재밌는 건 그 본부 건물 주변에 로마 유적도 있다. 로마 중심으로 라인강 안쪽에 있으니 유적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인상 깊은 건 그 유적이 레만호와 프랑스 알프스의 전망이 있다는 점인데, 그들의 미적 감각이 훌륭하구나 싶기도 했다.

올림픽 박물관. 입장료는 다소 사악하지만, 고대 올림픽의 역사가 로마 시대에 중단되고 그 이후에 쿠베르탱의 노력으로 부활하는 과정과 현대의 올림픽이 이어지기까지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그 올림픽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데 관광객도 정말 많다. 박물관 아래 기념품 가게에는 88서울올림픽 티셔츠부터 없는 티셔츠가 없다. 잠깐 고민했지만 구매하지 않기로 한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한잔하러 밖으로 나온다. 역시 토요일 저녁에는 젊은이들이 젊음을 즐기려고 바글바글 있다. 세련된 가게가 많은 게 프랑스 때문인지, 스위스 때문인지, 뭐가 됐든 세련됐다.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기차 위에서 보이는 레만호와 알프스에 역시 마음을 뺏긴다. 헤밍웨이나 T.S 엘리엇, 바이런, 에드워드 기번, 코코 샤넬을 비롯한 수많은 유명인사가 이곳에 머물렀다. 참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조금 심심할 수도 있을 듯하다. 겨울엔 덜 춥고, 여름엔 시원한 편이라니 날씨도 참 좋다. 겨울에 독일보다 일조량이 긴 것도 매력 중의 하나.


스위스 물가가 사악하다고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이제 독일과 스위스의 물가가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확실히 두 배 혹은 두 배 이상이었다면, 지금은 1.5배 내지는 1.7~1.8배로 느껴진다. 이에 임금은 스위스가 독일보다 훨씬 높으니, 사실 독일보다 스위스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게 월급쟁이로서는 훨씬 합리적이라는 계산이 내려진다.


어쩌면 독일의 세금이 월급쟁이에게 훨씬 가혹하다면 스위스는 세금이 훨씬 적은 편이니, 이런 측면에서 더욱 자본주의 친화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복지 혜택은 좋으니, 독일이 세금을 제대로 쓰지 않는 건가 싶은 회의감도 든다.


계속 추론을 이어간다면, 독일은 땅덩어리도 크고,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구동독 지역을 살리고, 에너지 문제도 더욱 많다 보니 세금이 구조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생각도 든다. 이에 더해 유럽연합에도 제일 많은 분담금까지 내니까 많은 세금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한편, 스위스는 이에 비해 에너지도 전기 소비량의 대부분을 수력, 원자력으로 충당하고, 독일의 문제와 같은 게 존재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혹자는 독일은 학비가 없지 않냐고 하겠지만, 이마저도 내가 사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학비가 1500유로, 스위스는 1000유로에 채 되지 않으니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겠다. 즉, 독일인이 아닌 내가 독일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이곳에서 더 많은 세금을 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기회가 주어져야 할 수 있는 건 맞는데 세상을 더 크게 보고 선택지를 넓혀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꼭 재독 이방인으로 남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독일보다는 좀 더 국제적인 스위스가 앞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데는 더 이상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는 결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의 산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