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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독 바다청년 Sep 17. 2023

프라이부르크의 역사

유럽 대륙의 중심?


그저 중세시대 이곳 마을의 한 공작이 세운 도시로, 자유를 사랑한 이들이 합스부르크 제국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자치권을 행사한 도시 정도로만 기억했거늘,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 사실 다른 동네로 여행 가면 그곳을 공부하겠다고 이런저런 글을 읽으면서도, 정작 내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또, 그냥 살다 보면 어떤 일이 500년 전, 1000년 전에 있었는지 신경 쓸 일이 없지 않은가.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이 도시의 뿌리부터 알아보자.


프라이부르크 내 11세기 후엽, 이곳 출신 베르톨드 2세가 시내 바로 뒤에 있는 조그만 산(Schlossberg)에 본인의 성을 만들고, 시내의 교역, 상업(Guild)을 통제하고, 이곳의 강(Dreisam)의 물을 끌어와 시냇가(Bächle)를 만드는 등 여러 일을 벌이며 영향력을 키운다.

Freiburg 시를 관통하는 강 Dreisam
뒷산(Schlossberg)의 풍경


사실, 이 조그만 성 혹은 도시가 성장하게 된 것은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검은숲에서 발견된 은광 덕분이다. 은광 채굴권을 옆 도시 바젤의 주교로부터 얻게 된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곳에도 대성당을 짓기로 한다. 그 결과가 지금 프라이부르크 시내에 있는 뮌스터 대성당(Münster).



한편, 이 도시를 다스렸던 공작이 대를 잇다가 그 백작 중 하나의 폭정에 마음에 들지 않은 시민들이 반발하는데, 시민들은 시내 바로 뒤에 있는 산 위의 성에서 그를 끌어내리고 그 성을 파괴함과 동시에 그 백작으로부터 20,000마르크의 은을 지급함으로써 자유(Frei)를 ‘구매’한다. 그리고 그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자발적으로 안전보장을 요구한다.




다음은 루이14세.


이곳 시내 뒷산 Schlossberg를 걷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반복적으로 보이는 Ludwig 14세. 그전까지는 다른 인물로 생각하다가 그가 그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라는 걸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계속 합스부르크 영향 아래 있었던 줄만 알았던 게 사실은 루이 14세의 영토 팽창 때문에 프랑스 영토였던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루이 14세의 유명한 장군 Vauban이 이 산에 요새를 만들었다는 사실마저 알게 된다. 그 요새가 있었던 곳엔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데, 프랑스가 이곳 영토를 다시 빼앗길 당시, 이 요새를 다 파괴해버렸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나는 그저 이 도시의 Vauban이라는 마을이 있는 이유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군이 그곳에 주둔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여진 줄 알았거늘, 사실은 수 백년 전부터 이어져 오던 역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걸 꽤 늦게 깨달았다.




한편, 내 고향, 대전 유성의 조그만 뒷산이 계룡산 줄기로부터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그리고 사실 대전의 조그만 산들이 다 이어졌다는 사실도 생각해 본다. 서울, 대구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도 이런 경우가 대단히 많다. 지구 반대편, 독일이라고 꼭 그러지 않을 법이라고 있나. 이곳 시내 바로 뒤에 동네 뒷산들은 어느 정도 다 연결되어 있고, 그 봉우리 중 몇몇은 검은숲의 큰 산들까지 이어져 있다. 그 검은숲 내지는 그 주변으로부터 라인강과 도나우강이 발원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검은숲이 단지 독일 내의 큰 공원 정도가 아니라 유럽의 큰 축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이곳은 유럽 대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가?


둘러보면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건 나의 마음가짐일 테다. 처음에는 모든 게 흥미롭고 좋다가도, 어느 순간 심드렁해지고 지겨워질 때도 있는 한편, 그곳이 집처럼 편안할 수도 있는 법이다. 아직 주변에 가지 않은 곳들이 있다.


또, 이곳에서 30분 정도만 조그만 철도를 타고 가면, 라인강이 나오고, 그 라인강 유역엔 역시 로마의 유적이 있다. 어쩌면 이곳을 단지 독일의 한 중소도시로만 보기엔 그 역사와 지리가 훨씬 다채로운지도 모르겠다.

Freiburg 근교 Breisach의 풍경

오늘은 한국행 비행기를 앞두고 이것저것 선물을 사러 시내를 둘러보는데, 그동안 학과와 일에 치여 내가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시내와 풍경이 내게 들어온다. 어쩌면 난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사느라 이곳에서의 삶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새로운 것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던 1년이 지나고 있다. 이곳에서의 앞으로의 시간이 내겐 어떤 걸 가져다줄지 모르겠다. 며칠 전, 만났던 새로 이사할 집주인은 원래는 그리스인인데 35년 전에 가족들을 따라 폴란드에서 이곳 프라이부르크로 넘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처럼 이 ‘유럽 대륙의 중심’에서 머물게 될 텐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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