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의 큰 축
이번엔 프라이부르크를 둘러싼 장대한 산, 검은숲(Schwarzwald; Black Forest)에 대해 더 알아본다.
앞서 내 고향, 대전 유성의 조그만 뒷산이 계룡산 줄기로부터 이어져 있고, 대전의 조그만 산들이 다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서울, 대구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도 이런 경우가 대단히 많다. 지구 반대편, 독일이라고 꼭 그러지 않을 법이라고 있나. 이곳 시내 바로 뒤에 동네 뒷산들은 대부분 연결되어 있고, 그 봉우리 중 몇몇은 검은숲의 높은 봉우리로 이어져 있다. 검은숲은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도나우강의 발원지이자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라인강의 발원지이니 검은숲이 단지 독일 내의 국립공원 정도가 아니라 유럽의 큰 축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검은숲의 크기를 수치적으로 따져보면, 길이로는 160km, 너비로 50km이니 우리로 따지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보다도 먼 거리에 그 폭도 어마어마한 셈이다. 이렇게 큰 숲, 산이 가로막고 있으니 이곳을 뚫고 지나가는 고속열차를 만들 수가 없다. 군데군데 터널이 있긴 하지만 그 비중은 정말 적고 산길을 따라 빙 둘러 도로가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실제로 이 검은숲 서부에 있는 필자가 사는 동네로부터 동쪽에 있는 도시로 이동하려고 할 땐 이 숲을 우회하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에 발붙여 산 이래, 이곳이 그저 규모가 크다고만 생각했거늘, 수많은 문화와 역사가 있다는 걸 이제야 살펴보게 된다.
먼저, 2천여 년 전 갈리아, 지금의 프랑스를 정복하고 지금의 서구 시스템의 창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인 카이사르가 고전하며 정복하지 못한 땅이 검은숲이다. 카이사르는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기점으로 국경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검은숲은 라인강 동쪽에 있었기에 로마 기준 ‘문명사회’는 아니었던 셈이다. 세월이 흘러 서로마 멸망 후, 9세기. 메로빙거 왕조의 샤를마뉴가 서유럽을 정복하고 신성로마황제의 칭호를 교황으로부터 수여 받았을 당시 프랑크 왕국의 군사경계선은 라인강으로부터 동쪽으로 꽤 떨어진 엘베강으로 옮겨졌는데, 유사하게 이쯤부터 이 검은숲이 문명사회로 편입하게 된다.
이를 비추어 서구 사회의 뿌리인 로마 시대 당시 문명사회가 아닌 이교도의 풍습을 사육제(카니발, Fastnacht / Fasching)를 통해 떠올려본다. 현대에도 이 시기에 이곳 지역인들은 특이하다 못해 기괴한 분장, 의상을 입는데, 이는 이교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교도라면 로마에 의해 혹은 로마 이후 샤를마뉴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당하기 전, 라인강 동쪽인 이 동네가 ‘야만인 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미신, 신화가 곳곳에 존재하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검은숲 내 큰 봉우리 중 하나인 칸델(Kandel)에는 마녀가 계속 나타난다고 하는데, 1981년, 발푸르기스의 밤(Walpurgisnacht) 당시 정상 부근에 2,000m3 규모에 달하는 돌이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한편 발푸르기스의 밤은 4월 30일 밤부터 5월 1일 낮까지 마녀와 악마가 활동하는 날에 사람들이 이를 쫓는다고 불을 피우는 날이다. 우리로 따지면 쥐불놀이와 같다고나 할까.
이어서 놈(Gnome)이라고 하는 난쟁이, 드워프 내지는 고블린도 이곳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이 모든 게 산이 많다 보니 세속과 떨어진 탓에 생긴 하나의 신화, 미신 등이 필연적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이제 검은숲의 남서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와 이곳에 연관성을 찾아본다. 프라이부르크로부터 멀지 않은 은광이 대량으로 발견된 곳은 앞에서 언급된,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칸델 부근인데, 이 은광 덕분에 경제 이 조그만 성 혹은 도시가 성장하게 된다. 은광 채굴권을 옆 도시 바젤의 주교로부터 얻게 된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곳에도 대성당을 짓기로 한다. 그 결과가 지금 프라이부르크 시내에 있는 뮌스터 대성당(Münster).
그전까지는 이 은광이 프라이부르크라는 도시를 키우는 데에만 쓰였다고 생각했거늘, 사실은 이 프라이부르크를 세운 Zähringer 가문이 이 은광을 통해 자본력을 키워 검은숲 내 깊숙한 곳에 성당은 물론이고 저 멀리 지금의 스위스 베른, 프리부르, 인터라켄 주변까지 소유하고 있었다는 역사를 알게 된다.
실제로 얼마 전에 방문한 수도원(St. Peter)은 역시 옛 은광이 있었던 칸델의 정상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았는데, 이 외딴 높은 고원에 저 높은 성당을 지었을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많은 권력과 부를 가졌는지 추측할 수 있다. 그들 가문은 이곳에 묻혀있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유겐트의 훈련 장소이기도 했단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과한 탓이었을까. 이 잘나가던 가문은 100년이 조금 지나 모든 권력을 잃게 되었다. 그들의 후손, 그 뿌리는 옛 바덴 공국으로 합쳐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1871년, 프로이센 중심으로 통일이 되었으니 그 명맥은 그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바덴이라는 이름 정도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어서 검은숲의 명물을 알아보자.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뻐꾸기시계, Cuckoo Clock의 원조도 이곳이다. 이곳의 수많은 광물과 빽빽한 나무가 이 뻐꾸기시계의 원자재로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실제로 이곳은 엄청난 규모의 벌목이 이뤄지던 곳으로, 이 목재는 도나우강을 통해 수송되었고, 근대에는 이 목재가 식민지 사업을 열심히 하던 네덜란드의 선박 산업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중세 유럽에서 제일 중요한 자원을 제공하던 지역 중 하나였던 이곳 광산의 대부분은 박물관으로만 남아있고, 현재 이 검은숲을 지탱하는 건 관광 산업이다. 수십, 수백가지의 하이킹 및 사이클 루트 및 스키장, 깊고 깊은 산으로부터 비롯된 대단히 큰 호수에서의 수상 스포츠 등등.
알프스만 알고 있는 채로 독일 땅을 밟고, 바이에른을 떠날 때만 해도 알프스를 벗어나게 되어 아쉬워하며 검은숲의 진가를 몰랐던 무지했던 나는, 지금 이곳의 매력에 푹 빠지고 있다. 그저 이곳이 등산이나 수영과 같은 아웃도어를 즐기는 데에 있어 좋은 곳임을 넘어, 마치 내가 우리의 명산을 찾아다닐 당시 등산이 그저 산을 오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의 삶과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듯, 이곳 사람들의 역사와 삶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는 듯하다. 지금은 프라이부르크를 중심으로 이곳을 해석하고 바라보았다면, 시간이 흐르며 이곳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랬을 때, 독일 남부, 내가 사는 바덴, 그리고 Swabian들의 사상과 생각, 뿌리를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검은숲의 서쪽에 있는 프라이부르크에는 하이데거, 검은숲 동쪽에서 살던 헤르만 헤세, 뭐 지금은 유명한 축구감독인 위르겐 클롭이 이쪽 출신이라고 한다.
파리, 로마, 런던과 같은 유럽 내 손꼽히는 대도시 혹은 관광지, 매력적인 곳이 아닐지는 몰라도 내 나름대로는 유럽 대륙의 큰 축으로써 이곳에서의 삶이 흥미롭고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