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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Jan 08. 2024

온천의 역사

카를로비 바리 여행기


20세기 초부터 불과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가기도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으로도, 신혼여행을 간다는 건 큰마음 먹고 제일 좋은 여행지로 가는 것이니 당시 온천은 명실상부 최고의 관광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온천을 생각해보자. 관광지로서 제대로 된 구실을 하는 온천은 몇 군데나 있는가? 한때는 부곡 하와이라고도 불리던 부곡온천은 거의 존재조차 하지 않으며 그나마 대도시인 대전에 있는 유성온천은 몇몇 대중목욕탕만 명맥을 유지할 뿐, 리베라, 유성호텔을 비롯한 수많은 호텔이 온천 영업을 그만두거나 심지어 문을 닫았다. 수안보 온천도 사정은 비슷하다. 온양, 도고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온천도 명맥을 유지할 뿐, 지금 그곳을 가면 한때 화려했던 휴양지의 쇠락한 모습을 그 어느 곳에서보다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실이 대한민국에만 있는 줄 알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갔던 바덴바덴을 비롯한 몇몇 독일의 온천은 화려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관광객이 꽤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했던 카를로비 바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를 살펴본다.


먼저 카를로비 바리의 역사부터 알아보자.

체코의 단군이라고 할 수 있는 보헤미아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4세(카를교의 그 카를)가 우연히 이곳에서 목욕하고 다친 다리가 완치된 이후로 온천 도시를 세우기로 마음먹는다. 이는 마치 태조 이성계가 유성온천을 찾았다는 것 멀리는 신라 시대의 왕이 동래온천을 찾았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곳을 다녀갔던 인물들은 화려하다. 베토벤, 쇼팽, 괴테, 마르크스, 터키의 케말 파샤, 러시아 황제 차르까지.



특히 괴테는 이곳을 사랑해 수차례 이곳을 찾았다.

괴테 헌정 맥주집
괴테가 머물렀던 숙소

이탈리아 기행의 시작점도 이곳이다.

“새벽 3시에 나는 카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총 13번 방문했는데 만년의 마지막 방문 때 19살 소녀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고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다. 괴테는 본인이 사는 바이마르, 로마에 이어 카를로비 바리 세 곳 중의 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표현했다. 어쩌면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바덴바덴에 가는 것보다 카를로비 바리가 더 가까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화려했던 도시는 수많은 건축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온천물을 직접 마실 수 있는 여러 그리스풍의 열주(Colonnade)부터 체코 왕들이 만든 황제의 목욕탕(Kaiserbad)만 해도 여러 개다. 안타까운 건 이 목욕탕 중에 영업하는 곳은 한 군데밖에 남지 않고 나머지는 그저 박물관으로 이용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엔 바덴바덴이나 부다페스트에 있는 대중목욕탕은 없고, 그저 호텔에 스파를 이용할 수 있는 곳들만 남아있다. 그마저도 메인 스트리트, 서울로 따지면 세종대로에만 있는 온천만 제대로 된 사업이 유지되는 듯하고, 언덕 위의 수많은 호텔은 투자가 되지 않아 노후화됐고 관광객을 거의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며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짭쪼름한 바닷물 맛이 나는 온천수

물론 이곳에도 최고급 호텔이 있고, 그곳은 랜드마크로써 그 역할을 잘 수행하는 듯하다. 그 호텔은 영화 007 카지노로얄의 배경이 되던 곳으로 호텔 내외부도 화려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예외이다.

Grandhotel Pupp

그렇다면 바덴바덴과 부다페스트 등과의 유럽 내 성공적인 온천 휴양지와 이곳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부다페스트는 관광객들이 그저 온천만을 위해 방문하는 건 아니고 온천이 하나의 관광상품이니 다른 사례라고 간주하고, 온천 명소라는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바덴바덴과의 차이라면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서구권에 계속 있던 바덴바덴은 워낙 독일 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동네 주변이고, 그 도시 자체도 돈이 많으니 자본이 지속해서 많이 투자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동구권인 이곳은 물론, 냉전 시대에도 소련 내 관광객들의 유치가 있었겠지만, 바덴바덴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수의 관광객은 물론이고 자본 투자도 어렵지 않았을까.


섣부른 예측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 쇠락하는 온천 휴양지는 앞으로 그 화려했던 명성을 찾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같은 동아시아권이지만, 그 명맥이 대체로 잘 유지되는 일본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온천 명소가 아쉬울 따름이다.



카를로비 바리, 이곳은 지금까지도 독일어가 많이 쓰이긴 한다. 영어보다도 독일어가 더. 이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으니 이는 다음에 살펴보자. 하지만 그보다도 더 많이 쓰이는 건 러시아어. 이곳 호텔에 일하는 사람 중 러시아 출신이 대단히 많다는 점과 더불어 러시아 황제 차르가 이곳을 찾고 정교회 교회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교회를 보며 체코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여실히 느끼기도 한다. 적어도 이곳엔 체코인 다음으로 많은 러시아인, 그리고 이미 하나의 독특한 문화로 섞여버린 이들을 보며 냉전이 끝났음에도, 45년 남짓의 그 세월이 얼마나 길었는지, 동유럽 국가에서 직간접적으로 러시아의 자유로운 국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독일인들이 특히 온천을 특히 좋아하는 듯하다. 어쩌면 목욕을 좋아하는 진정한 로마인의 정신적 후예는 이태리인보다도 독일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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