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비 바리의 독일어 이름은 Karlsbad, 영어로는 Carlsbad.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 이곳은 독일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곳이다. 그 역사를 살펴볼까.
먼저 체코의 보헤미아 왕국이 한때 신성로마제국 내 하나의 나라였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독일 연방(German Confederation)이 있을 때만 해도 일종의 ‘도이치국’이였다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만 해도 폴란드 계통의 프로이센이 스스로를 도이치 민족이라 여겼던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지금의 체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제외한 오히려 독일을 통일했다며 한 역사학자는 이야기하기도 했으니.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베를린보다도 더 독일스러운 곳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불과 1945년 전까지.
분쟁의 씨앗은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부터 벌어진다. 물론 체코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차 세계대전 패전의 멍에를 지고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체코-슬로바키아는 독립하게 된다. 여기서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지역은 대다수가 체코인보다는 독일인이었던 카를로비 바리를 비롯한 지역이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른다면, 이곳은 오스트리아 혹은 독일이 되는 게 더 합리적이었을 수도 있으나 결국 체코 영토로 편입된다. 이 결정은 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데, 권력을 쟁취한 나치, 제3제국이 이곳을 체코로부터 돌려받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나치는 이 주데텐란트(Sudetenland)는 연합국들에 의해 독일인들이 억울하게 뺏긴 땅이었다고 사람들을 선동했고, 궁극적으로는 전쟁을 원치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는 뮌헨 협정을 통해 히틀러에게 이 땅을 ‘실질적으로’ 그냥 주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아는 것처럼 히틀러는 이에 멈추지 않고 체코를 손쉽게 제압했고, 이어서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여기서 문제점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만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제일 중요한 당사국인 체코는 아예 배제되었다. 이곳은 체코 내 70% 철강산업, 70% 전력이 해당하는 발전소와 더불어 독일을 경계로 산과 강을 끼고 있는 군사요충지대를, 군사동맹까지 맺었던 프랑스를 포함한 강대국들에 의해 그냥 빼앗기게 된 셈이었다. 이렇게 요충지를 뺏긴 체코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치에게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체코가 상대적으로 세계 10대 산업 강국이었을 만큼 탄탄한 산업에 비교적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중동부 유럽 중에선 유일하게 민주 정부가 들어섰던 국가였다. 그 강한 중공업 산업이 강대국들에 의해 히틀러에게 손쉽게 넘어갔으니 뮌헨협정은 이는 향후 전쟁을 어렵게 만든 연합국의 뼈아픈 실책이자, 체코인들의 나치뿐만 아니라 서구 열강에 대한 분노도 지극히 이해가 간다. 현대에 주는 교훈이라면 힘이 없는 국가는 이처럼 강대국들에 의해 쉽게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히 현대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이렇게까지만 서술하면 전쟁을 일으킨 독일인만이 비난받을 수 있다.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전쟁이 끝나고 주데텐란트에 사는 독일인들은 강제로 쫓겨났다. 지금은 폴란드가 된 옛 프로이센 영토에 살던 독일인들이 강제 이주된 것처럼. 한순간에 살던 곳에서 쫓겨난 이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자나 당한 자, 모두에게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우크라이나 전쟁도 종전에는 틀림없이 모두에게 비극이 될 것이다.
한편, 체코는 전쟁이 끝나고도 1968년 프라하 봄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소비에트에 탄압을 받았으니 유난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체코는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게 성장하는 곳이고, 국민소득이 3만불 가까이일 정도로, 대표적인 동구권 국가인 폴란드, 헝가리보다 훨씬 잘 산다. 하지만 여기서 근원적인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이 나라가 기타 유럽의 선진국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안타깝지만 조금은 비관적인 전망을 내린다. 내가 느끼기엔 적어도 헝가리, 폴란드보다는 상황이 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정도와 대적할 만큼 기초 기술력, 그를 대변할 뚜렷한 기업, 산업도 부족하다는 점, 그들의 대적할 정도의 학계, 대학의 명성과 성과를 이루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시선도 지극히 서구적인 생각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본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시각을 동양에서 온 내가 동구권 국가에 하고 있으니 어쩌면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전망과 다른 전망을 내릴 수도 있다. 미국과 기존 선진국들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와 더불어 독일에 존재하는 심각한 관료주의의 병폐 등으로 이들이 더욱 쇠락한다고 했을 때 이는 단순히 G2가 아니라 다극화된 세계로 이어져 동구권 국가들의 약진이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독일에서 바라본 모습은 동구권 국가들의 독일로의 유출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임금을 비롯한 여러 상황이 체코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더 매력적인 선택은 아니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한편 카를로비 바리에서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기차는 체코와 독일의 국경, Ore Mountain을 지나가는데 이곳은 말처럼 광산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이곳엔 강도 흐르는데,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산에서 나오는 석탄으로 화력발전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화력발전소가 있다. 그리고 체코의 실질적인 산업은 이곳에 집중된 듯하다. 아직 에너지전환에 멀게 느껴지는 이곳. 도시 내 자전거나 도보를 위한 공간보다도 수많은 차량 통행이 이뤄지는 이곳은 흡사 우리나라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도 에너지전환이라는 과제는 선진국에서나 고민할 수 있는 문제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스스로 던져본다. 어쩌면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곳도 변할 수 있다. 유럽연합에서도 그런 정책은 계속 펼치고 있으니. 다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생각보다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는 듯한 느낌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마음은 줄일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광산이 있는 곳에 온천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데, 일례로 광산이 있는 문경에 온천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한다. 지각활동이 활발한 곳에 광산이 있고 물의 온도도 뜨겁다는 점을 유추해본다. 땅을 연구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물의 온도가 높다는 건 지열에너지의 잠재력이 많다는 것도 의미한다. 이곳에 향후 수많은 지열발전소를 기대하는 건 나의 과한 욕심일까.